한국은행의 통화 완화 정책은 하반기 이후에나 이뤄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조기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약해진 데다 국내 물가 상승률 역시 3%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와 중국의 경기 침체 등을 불안 요소로 평가하면서도 국내 경제에 구조적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2회 한국최고경영자포럼’에 참석해 “(국내) 생활물가가 여전히 높아 기대 인플레이션을 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이것을 확인하지 않고 섣불리 금리를 낮췄다가 다시 올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정책적으로 막대한 혼란이 온다”고 우려했다. 또 “우리 국민들은 과거 고성장 시대 기억이 있으니 경제성장률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본다”며 “경제가 불안하니 금리를 낮추라고 말하는데 이러면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며 여러 문제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부동산으로 자금이 몰릴 경우 실질 부가가치 증대 대신에 가계부채 확산 등 부정적 효과가 크다는 것이 이 총재의 평가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 역시 이 총재와 같은 입장이다. 1월 11일 열린 새해 첫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록을 보면 금통위원들은 “물가가 2%에 안착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긴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리 인하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데 위원들은 만장일치로 동의하기도 했다. 한은은 금리 인하 기대감과 관련해 시장에 경고 목소리도 냈다. 한은은 지난달 미국·프랑스 등 주요 국가 사례를 분석한 자료를 통해 “자칫 부주의로 경계를 풀면 물가 안정기로의 진입이 무산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들 국가의 경우 ‘라스트마일(최종 구간)’ 단계에서 부주의한 탓에 물가 안정기 진입에 실패했다는 것이 한은의 평가다.
전문가들 역시 이달 22일 예정된 한은 금통위는 물론 상반기 내 통화정책 완화 기조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의 금리 인하는 9월 이후에나 이뤄질 것”이라며 “한국은 미국에서 금리를 낮춘 후에야 금리를 내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시장에서는 올해 5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정책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예상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 역시 금융시장 변동성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한은의 통화정책 ‘피벗’이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PF 등 구조조정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 또한 나온다.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부동산 경기 침체와 건설 업계의 사업성 악화가 이어지고 있다”며 “금리 인하가 계속 미뤄질 경우 PF 부실이 더욱 늘어날 위험성이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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