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해양진흥공사와 하림(136480)·JKL파트너스 컨소시엄 간 HMM(011200) 매각 협상이 결국 무위로 돌아가면서 가까운 시일 내 HMM 재매각은 사실상 물건너 갔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내년이면 정부 측의 HMM 지분율이 영구채의 주식 전환으로 기존 58%에서 74%까지 높아져 덩달아 매각 가격도 오르기 때문이다. 인수 후보자를 찾기가 더 까다로워질 수 있다. 여기에 HMM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해운동맹 재편 움직임과 공급망에서 국적 선사의 중요성도 커져 매각 측의 고민도 깊어지는 상황이다. 해운 및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국적 선사인 HMM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매각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현재 HMM 지분은 57.9%지만 잔여 영구채가 콜옵션 행사로 모두 주식으로 전환되는 2025년 4월 이후에는 73.8%로 급등한다. 무려 15.9%포인트가 늘어나는 셈이다. 하림 측이 HMM 지분(57.9%)을 6조 4000억 원에 인수하겠다고 밝혔던 점을 고려하면 단순 계산 시 73.8%에 대한 지분 가치는 약 8조 1575억 원이 된다. HMM 우선협상 대상자 지위를 놓고 치열하게 다퉜던 하림그룹(재계 27위·지난해 3월 자산 기준)과 동원그룹(54위) 모두 자금 조달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뒤따랐던 점을 고려하면 8조 원 넘는 자금을 조달할 인수 후보군은 극소수에 그친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현대차·포스코·한화·HD현대그룹을 HMM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하지만 IB 업계에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입장이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화·HD현대그룹의 해운업 진출설이 꾸준히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선박을 제조하고 공급하는 조선사와 구매하는 해운사의 이해관계는 상충될 수밖에 없다”며 “현대차그룹도 현대글로비스가 있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이참에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전 세계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국적 선사로서 역할을 유지하는 동시에 민간기업으로서 역동성을 살릴 매각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선장 출신으로 해상법 전문가인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공급망 안정화 차원에서 원재료 확보에는 신경 쓰면서도 정작 수송망 확보에는 소홀했다”며 “국내 대표 컨테이너선사인 HMM의 선복량은 2022년 말 기준 81만 6365TEU(1TEU=약 20피트 컨테이너 1개)로 대만의 에버그린과 양밍(약 200만 TEU)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최대주주인 선사라도 유능한 전문경영인을 선임하고 필요 시에는 컨테이너선을 대거 확충하는 등 투자 결정을 하도록 뒷받침해준다면 오너가 있는 선사에 뒤질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정부가 최대주주인 대만의 컨테이너선사 양밍을 꼽았다. 양밍은 코로나19로 전 세계 해운물류가 마비됐던 당시에 긴급하게 선박을 투입해 대만 기업의 원활한 물류 수송을 도왔다. 즉 일정 기간 정부가 HMM의 최대주주로 있으면서 선복량 확대 등 국내 해운 물류 경쟁력 강화에 우선 나선 뒤 매각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컨테이너선사의 생사는 해운동맹과 화주 확보에 달렸다”며 “해외 선사와 화주가 HMM과 안정적인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정부는 재매각 여부에 대한 입장을 조속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HMM 매각 측 관계자는 “협상이 결렬됐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국가 경제에 부담되는 사안은 아니다”라며 “숙고의 시간을 갖고 지배구조뿐만 아니라 HMM의 중장기 지속 가능성 등을 모두 고려해 관계기관 간 협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협 선정을 놓고 하림그룹과 경쟁했던 동원그룹 관계자는 “(HMM 인수 재도전에 대해) 현재로서 정해진 것은 없다”며 “해운 산업 발전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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