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농지 보전을 위해 1975년 도입한 농지보전부담금이 수술대에 오른다. 윤석열 대통령이 “91개 부담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으로 정부는 감면 대상과 감면율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 기업의 부담을 덜고 투자 확대를 이끌어낸다는 취지이지만 일각에서는 농경지 축소에 식량 안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0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어촌공사 등은 지난주 농지보전부담금 경감 방안 마련을 위한 첫 회의를 개최했다.
농지보전부담금은 농지를 다른 용도로 전용하려고 할 때 내는 부담금으로 올해 농식품부가 계획한 연간 징수 규모는 지난해보다 16.5% 늘어난 1조 3800억 원이다. 농식품부 소관 8개 부담금의 연간 징수액 가운데 88.3%를 차지한다.
현재 농식품부 등은 농지보전부담금 감면 대상이나 감면율을 확대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농지보전부담금 부과율은 현재 개별 공시지가의 30%이고 상한액은 ㎡당 5만 원이다. 국가·지자체 공용 시설, 제조업 창업 기업 등은 최대 100%까지 부담금이 감면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권 차원에서 부담금 개편을 들여다보고 있는 만큼 개선 방안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살피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농지보전부담금이 감소하면 이 부담금을 주 재원으로 하는 4조 원 규모의 농지관리기금 체계 개편도 추진할 예정이다. 농지관리기금은 누계 기준 기금 조성액의 63.0%를 농지보전부담금이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크다. 부담금이 줄면 기금 조성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농식품부는 기금 사용처가 기금 조성 목적에 부합하는지 등을 보고 기금의 용도에 맞지 않는 지출 항목이 있다면 해당 항목을 기금이 아닌 다른 예산으로 돌리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 현재 농지관리기금은 농지은행·농지연금, 대단위 농업 개발 사업 등에 쓰이는데 이 가운데 새만금 같은 사회간접사업(SOC)에 쓰이는 비용을 기금이 아닌 일반 계정이나 특별 계정으로 바꾸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농지보전부담금 감면 대상이 확대될 경우 기업의 농업 부지 개발은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A 기업이 33만 1000㎡(약 10만 평)짜리 농지에 공장을 짓는다면 현재 A 기업에 부과되는 부담금은 최대 165억 원(㎡당 5만 원)인데 여기에서 50%만 감면 받아도 해당 기업은 수십억 원의 준조세 부담을 덜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부담이 줄 경우 농지가 과도하게 개발되고 경작 면적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담금 부과에도 불구하고 1975년 224만 ㏊에 달했던 경지 면적은 2022년 기준 153만 ㏊로 50년 새 33%나 줄어들었다. 부담금 경감에 대해 개발 측에는 호재지만 농지 감소 속도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농식품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부담금 상한선을 높이거나 농지보전부담금 부과율에 차등을 두는 방안 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농지 감소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1차로는 부담금 상한선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했다. 상한선이 2006년께 5만 원으로 결정된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공시지가 상승률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정부는 우량 농지 보호를 위해 농업 진흥 지역의 부담금 부과율을 비농업 진흥 지역보다 더 올리는 구체적인 방안도 검토했다. 농업 진흥 지역은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보전하기 위해 우량 농지로 지정된 지역이라 비농업 진흥 지역보다 활용에 제한이 많아 공시지가는 상대적으로 낮다. 이 때문에 부담금 규모가 적은 우량 농지로 개발 수요가 몰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부담금 개편 작업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개발 기업 시각에서 보면 농업 진흥 지역은 미개발지지만 농산업 입장에서는 기계화를 통해 향후 대규모 생산이 가능하도록 만들어둔 농업 맞춤형 개발지라 장기적인 보존 필요성이 높다”며 “물론 개발도 필요하지만 단순히 땅값이 싸 땅값을 아끼기 위해 농지로 들어온다면 다시 농지로 되돌리기 어려운 미래 자산을 소진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지보전부담금에 대한 최종 방안은 다음 달 중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체 부담금을 제로베이스(원점)에서 보고 있다”며 “국민·기업 입장에서 불필요하게 부담하는 것, 국가 경제에 전체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거나 필요성이 떨어지는 부담금을 정비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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