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걸려온 후 스마트폰 화면의 상단바를 3초 정도 뚫어지게 쳐다봤다. 곧 레이저를 쏘듯 기자의 시선이 닿은 곳에 일종의 마우스 커서가 생겼고 시선을 움직이자 커서도 따라갔다. 통화 버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전화를 쉽게 받을 수 있었다. 중국 제조사 아너가 최신 인공지능(AI) 스마트폰 ‘매직6’에서 지원하는 ‘시선추적’ 기능이다.
전화뿐 아니라 문자 메시지가 왔을 때 상단 팝업창을 바라보고 시선을 내리깔면 손으로 동작한 것처럼 메시지 전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계 알람을 끄는 일을 포함해 여러 앱에서 기본적인 손동작을 시선추적이 대체할 수 있었다. 아직은 커서 조작이 자연스럽지 않았고 당장 스마트폰 사용 경험을 극적으로 바꾸는 기능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베일에 가려졌던 중국 AI폰들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단적인 사례로는 충분해 보였다.
27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4’ 2일차를 맞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라그란비아 전시장에서는 AI폰 대전이 펼쳐졌다. 삼성전자, 아너, 샤오미 등의 부스(전시관)가 모인 3관은 왕복 2차로만큼 넓은 복도가 항상 관람객으로 가득차 먼 길을 빙 돌아 이동해야 했다. 올초를 전후로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일제히 생성형 AI모델이나 운영체제(OS)를 탑재하고 고성능 AI 기능을 지원하는 AI폰을 출시했다. 모두 최신형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두뇌칩)를 탑재한 만큼 처리속도 등 실제 사용하면서 느낀 전반적인 성능과 외형은 서로 대동소이했지만 구체적인 AI 기능에서는 각자 차별점이 드러났다. 특히 북미 진출이 막힌 중국 업체들 입장에서는 이번 MWC가 글로벌 AI폰 데뷔전이나 다름없다.
샤오미가 MWC 직전 유럽에 출시한 최고급형 플래그십 ‘샤오미14 울트라’의 가장 중요한 AI 기능을 물어보니 부스 직원은 곧장 “AI 초상화(portrait)”라고 답했다. 사용자가 자기 사진 25장 이상을 찍어 올리면 AI가 이를 학습해 사용자를 닮은 가상인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 텍스트 명령어를 입력하면 그 가상인간에 임의의 동작과 상황을 입힌 사진을 생성할 수 있다. 네이버 스노우의 ‘AI 아바타’와 ‘스태이블디퓨전’ 같은 이미지 생성 기능이 샤오미폰의 갤러리(사진·동영상) 애플리케이션에서 지원되는 것이다.
실제로 기자 얼굴을 찍어 시험해보려 했지만 서로 다른 배경과 포즈를 취하는 사진들이 필요하고 처음으로 가상인간을 만드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려 이미 만들어진 아바타로만 테스트했다. 아바타를 고르고 ‘말을 타고 가고 있다’는 명령어를 입력하자 이에 부합하는 사진이 만들어졌다. 말에 탄 사람에게 어울리는 카우보이 모자, 붉은 스카프, 미국 서부지역을 연상케 하는 배경은 따로 명령어에 들어있지 않았는데도 AI가 알아서 만들어냈다. 다만 온디바이스(기기 내장형)AI가 아니라 외부 클라우드를 통해 지원되는 기능이라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샤오미는 기본적인 번역과 요약을 제외하면 AI 기능을 갤러리 앱에 집중시킨 모습이었다. 또 다른 기능으로 원하는 피사체는 물론 사람을 골라 지울 수 있는 사진 편집이 지원된다. AI는 특히 사람을 거의 완벽하게 구분해냈고 터치 한번으로 특정인을 골라서 지울 수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을 지우면 빈 공간을 채우는 배경이 어색하게 뭉개지는 모습이었지만, 프라이버시 등을 이유로 특정 소수의 사람을 지우는 데는 유용할 것으로 보였다.
1관을 거의 통째로 빌려 화웨이는 지난해 출시한 ‘메이트60’ 시리즈를 전시했다. 경쟁 제품들에 비해 한 세대 뒤쳐졌지만 자체 AP와 AI 덕분에 카메라 성능에서는 두각을 발휘했다. 카메라 촬영모드의 하나인 ‘오토모드’는 이름은 평범했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정확하게 잡아내는 일종의 ‘동체시력’을 키워주는 기능이다. 부스에 설치된 풍차 모형을 기자의 ‘갤럭시S24’와 메이트60으로 각각 촬영해봤다. 갤럭시S24는 출시 한 달밖에 안 된 삼성전자의 최신작인데도 회전하는 풍차 날개가 뭉개져 촬영됐지만, 메이트60은 풍차 날개를 정확히 포착해 거기에 쓰인 ‘Windmill(풍차)’이라는 글자도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ZTE는 AI폰은 아니지만 역시 스마트폰 적용이 가능해보이는 3차원(3D) 이미지 변환 기능을 자사 태블릿PC ‘누비아패드3D 2’를 전시했다. 3D 영화처럼 별도의 촬영 기술 없이 2차원(2D) 이미지만 보고 AI가 피사체와 원근감 등을 파악해 입체적으로 바꿔주는 기능이다. 일반적인 유튜브 영상을 재생하며 기능을 활성화했더니 제법 그럴듯한 3D 영상이 실시간으로 만들어졌다. 영상 속 앵무새의 부리가 가장 튀어나오고 배경은 흐리게 뭉개져 흡사 태블릿 안에 홀로그램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태블릿의 전면 카메라가 사용자의 시선을 감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화면 속 물체가 회전하는 3D 기능 역시 자연스럽게 구현됐다. 이 태블릿은 지난해 출시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두뇌칩)인 퀄컴 ‘스냅드래곤8 2세대’로도 이 같은 기능을 구현하는 만큼, ZTE가 사용자 수요만 확인한다면 최신 AP가 들어간 스마트폰에도 확대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시도도 있었다. 글로벌 이동통신사 도이치텔레콤은 앱이 필요없이 AI 비서에게 명령하는 방식으로만 다양한 기능을 쓸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AI폰 시제품을 공개했다. 직접 써본 시제품은 홈 화면에 AI 비서를 부르는 버튼만 덩그러니 있었다. 버튼을 누르고 “다음주 프랑크푸르트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항공편을 예약해달라”거나 “2살짜리 딸에게 줄 선물을 추천해달라”는 명령을 내리니 AI는 적절한 결과를 화면에 띄워 보여줬다. 폼팩터(제품 형태) 혁신 경쟁 역시 꾸준히 이어졌다. 화웨이는 폈을 때 5.3㎜로 역대 가장 얇은 두께를 가진 폴더블폰 ‘메이트X5’를 전시했다. 반으로 접었을 때 두께는 갤럭시S24 정도에 그쳤으며 무게 역시 부담스럽지 않아 폴더블폰의 단점 하나를 말끔히 해소한 것으로 보였다. 모토로라는 모회사 레노버 부스에서 구부러지는 디스플레이와 외형 재질을 가져 스마트밴드 겸용으로 사용 가능한 밴더블(구부러지는)폰 시제품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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