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디스플레이가 세계 최초로 8.6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라인 구축에 착수했다. 최근 노트북·태블릿 시장에서 애플과 같은 주요 제조사들이 액정표시장치(LCD) 대신 OLED의 비중을 늘리는 가운데 삼성이 후발 주자인 중국 BOE 등을 따돌리기 위해 다시 한번 초격차 투자에 나서는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충남 아산캠퍼스에서 8.6세대 OLED 패널을 생산하는 A6 라인에 대한 설비 반입식을 열었다고 10일 밝혔다.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을 비롯해 일본 캐논도키와 원익IPS·파인엠텍·엘오티베큠 등 주요 협력사 관계자들이 행사에 참석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신규 클린룸 공사를 완료했고 올해 장비 반입 및 시제품 생산 등의 과정을 거쳐 2026년부터 양산에 나설 계획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4월 이번 생산라인 구축에 4조 1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아무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자”고 강조한 바 있다.
삼성이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한 8.6세대 라인은 패널을 생산할 때 투입되는 유리 원판(원장)의 크기가 가로 2290㎜, 세로 2620㎜로 기존 6세대(가로 1500㎜, 세로 1850㎜)보다 면적이 2배 이상 넓은 것이 특징이다. 6세대 라인에서는 14인치 패널을 기준으로 32장을 만들 수 있고 8.6세대에서는 88장이 생산된다.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원장 크기 경쟁에 나서는 것은 생산 효율화 때문이다. 과거에는 크기가 작은 스마트폰 패널을 주로 만들었기 때문에 원장 크기가 작아도 버려지는 원장 면적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8·12인치 웨이퍼를 사용하는 반도체 공정에서 굳이 웨이퍼 크기를 키우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태블릿 PC, 노트북 등 정보기술(IT) 기기 전반에서 OLED 패널 사용이 확산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기존의 작은 원장에서 스마트폰보다 더 큰 패널을 찍어낼 경우 원장 1개에서 버려지는 마더글라스의 면적이 커져 그만큼 생산 효율성이 떨어진다. 애플이 이달 출시할 예정인 ‘아이패드 프로’를 삼성디스플레이가 6세대 라인에서 생산하는데 똑같은 제품을 8.6세대에서 생산하면 수익성이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삼성의 이번 투자는 OLED 업계에서 중국의 맹렬한 추격을 따돌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삼성과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4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애플의 아이패드 프로 OLED 패널 주문을 싹쓸이하면서 일단 한숨을 돌렸지만 안심할 처지가 아니다. 삼성이 자랑하던 폴더블폰용 OLED 시장만 봐도 지난해 4분기 중국 BOE가 점유율 1위(42%)에 올라서며 삼성디스플레이(36%)를 따돌렸다. 최 사장 역시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1년 정도까지 좁혀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LCD 시장에서 삼성과 LG를 밀어낸 중국의 물량 공세는 OLED 시장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BOE는 지난해 11월 630억 위안(약 11조 5000억 원)을 투자해 8.6세대 라인을 깔겠다고 발표했다. 양산 물량은 원장 기준 월 3만 2000장으로 삼성의 1만 5000장보다 2배 이상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정부의 보조금을 업고 가격 후려치기에 나서면 우리 업체들이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 LG디스플레이 역시 8.6세대 투자 시기를 조율하고 있지만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게 고민이다.
디스플레이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29년에는 전체 IT 제품용 패널 10장 중 4장은 OLED 패널로 대체될 것이고 연간 매출 또한 12조 원까지 커질 것”이라며 “LCD 시장은 중국에 내줬어도 OLED 시장만큼은 반드시 지켜내야 스마트폰·태블릿 등 국내 세트 제품의 경쟁력 또한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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