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퍼스트 무버(선도자)’를 내건 현대자동차가 올해 연구개발(R&D)에 5조 원을 투자한다. 경기 침체로 인한 자동차 시장의 성장세 둔화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투자에 나서며 기술력 확보에 열을 올린다. 소포트웨어중심차(SDV)와 자율주행 등 핵심 사업에서 경쟁사와의 격차를 벌리고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5일 현대차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가 계획한 올해 R&D 투자금은 4조 9092억 원으로 전년 집행한 투자금(4조 1391억 원)보다 18.6% 늘렸다. 현대차는 2022년 R&D 투자금을 3조 5268억 원으로 1년 새 14% 증액한 뒤 지난해(17.4%)와 올해(18.6%)까지 3년 연속으로 두 자릿수 증가율을 이어가기로 했다. 총 12조 5159억 원인 전체 투자금에서 R&D 투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9.2%로 가장 크다.
주목할 점은 현대차가 미래 사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회사는 올 한 해 신사업을 위한 R&D 투자와 전략 투자(1조 8556억 원)를 전년 대비 확대했다. 공장 신·증설(2조 2091억 원)과 제품 개발(1조 7457억 원), 보완 투자(1조 5875억 원) 등을 일제히 축소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지난해에는 울산과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으로 인해 공장 신·증설 투자 규모를 두 배 넘게 늘렸다.
현대차의 투자 밑그림에는 ‘체질 변화’를 강조한 정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정 회장은 신년사에서 “한결같고 끊임없는 변화로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체질을 만들고자 한다”며 지속 성장을 위한 혁신 의지를 다졌다. 같은 달 소프트웨어 개발 조직을 통합한 ‘AVP(Advanced Vehicle Platform)’ 본부를 신설하며 전사 차원의 R&D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힘을 줬다.
현대차는 올해 SDV와 관련한 R&D에 역점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까지 모든 차량을 SDV로 전환하기로 한 당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완성도 높은 기술력을 확보하는 게 시급하기 때문이다. SDV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차량 상태와 기능을 관리·개선하는 차량을 의미한다. 스마트폰처럼 부품 교체 없이 차량 성능을 최신으로 유지할 수 있는 혁신 기술로 꼽힌다. 여기에 수소 전환과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로보틱스 등 미래 핵심 사업에도 속도를 낸다.
자율주행 분야도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자율주행 합작사인 ‘모셔널’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모셔널은 사업 계획에 따른 자금 수요를 조사하고 있다.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각사는 조만간 이사회를 열고 모셔널의 사업 계획에 대한 검토·승인을 거쳐 유상증자 여부를 결정한다. 공동 출자사인 미국 ‘앱티브’가 모셔널의 유상증자를 포기하기로 하면서 현대차그룹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기아는 올해 3조 3228억 원의 시설·설비투자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2조 2370억 원)보다 48.5% 증가한 것으로 R&D 관련 비용은 제외한 금액이다. 2조 1340억 원은 국내 공장에, 4705억 원은 미국 공장에 각각 투입해 공장의 생산 능력과 가동률을 높이고 품질 향상, 신제품 개발에 집중한다. 멕시코(3889억 원)와 인도(1747억 원), 슬로바키아(1547억 원) 공장에 대한 투자도 함께 확대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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