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지난해 스타트업 지분 투자를 전년보다 70% 가까이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계열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스타트업 등에 투자해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 고금리 국면을 맞아 차질을 빚고 있다는 지적이다.
18일 벤처투자정보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지분투자 금액은 6351억 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은 2조 668억 원, 2021년은 2조 171억 원을 기록한 것과 비교할 때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투자 건수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대기업·중견기업의 2023년 투자 건수는 191건으로 2022년(338건)보다 약 44% 감소했다.
이 같은 보수적인 행보는 일반 벤처캐피탈(VC)의 투자 추이와 비교할 때 이례적인 현상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투자액은 10조9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2.5% 줄었다. 이는 중기부 소관인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와 금융위원회가 관리하는 ‘신기술사업금융업자’ 등의 투자 실적만 합한 금액이다. 2021년 15조9000억원에서 2022년 12조5000억원으로 즐어든 데 이어 지난해에도 감소세를 이어갔지만 일반 기업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투자 열기가 꺾이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이 최근 들어 강화되는 등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들의 구원 투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받았지만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벤처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태펀드 등 출자자(LP)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힘든 VC에 비해 독립성과 풍부한 자금을 동시에 갖춘 대기업이 투자를 더 크게 줄인 것은 이례적 현상”이라며 “투자 혹한기를 맞아 피투자사 중에 폐업한 사례가 눈에 띄게 늘면서 조직 내부적으로 스타트업과의 동반 성장 전략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커진 것이 영향을 미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 투자 이력이 있는 스타트업 중 폐업한 기업은 총 146개 사에 달했다. 벤처 투자 시장이 본격적으로 얼어붙기 이전인 2021년 114개 사와 비교하면 28.1%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한동안 업종을 가리지 않고 각광을 받았던 스타트업 등과의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이 선회 기로에 놓인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벤처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은 투자는 물론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인맥이나 전문성, 경험, 영업망과 같은 인프라를 지원할 수 있어 상당수 스타트업 대표는 VC보다 일반 기업의 투자 유치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대기업의 신규 투자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문을 닫는 회사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올해부터는 여건이 한결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섞인 예측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두산그룹은 최근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이 펀드는 두산그룹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인공지능(AI), 로봇, 반도체, 자동화, 친환경에너지 등 분야에 투자할 계획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