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연공서열식 임금구조와 강력한 정규직 고용 보호 제도가 되레 중장년층의 고용 불안을 키우고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20일 이 같은 내용의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기능 회복 방안’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한국과 미국 임금근로자의 근속연수를 비교했다. 한국은 30세에 2.8년(중위값 기준), 40세에 5.3년을 거쳐 40대 후반에 9.9년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림세로 접어든다. 60대에는 1~2년으로 수치가 급감한다. 여성의 경우 40대부터 하락하는 형태다. 특히 모든 연령을 통틀어도 한 직장에서의 근속연수가 5년을 넘지 못했다. 중년 이후로는 같은 직장에서 일하기가 어려움을 보여준다.
미국은 반대다. 미국 남성은 30세(3년)와 40세(5년)를 거쳐 50세(8년), 60세(9년), 70세(11년) 등으로 꾸준히 증가한다. 미국 여성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고용 불안정성이 클 것이라는 상식과는 정반대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임시 고용직 비중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의 55~64세 근로자 가운데 임시 고용직 비중은 34.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회원국 평균(8.6%)을 네 배가량 웃돈다. 2위인 일본과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남성의 임시 고용 비중은 33.2%, 여성은 35.9%다.
KDI는 중장년층의 고용이 불안한 이유가 연공서열제에 있다고 해석했다. KDI가 OECD의 2019년 데이터를 토대로 근속연수가 10년에서 20년으로 증가할 때 각국의 임금 상승률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15.1%로 OECD 평균(5.9%)보다 크게 높았다.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한국에서는 정규직 임금의 경직성과 과도한 연공서열형 임금구조가 (기업들의) 중장년 고용 수요 감소를 부르고 있다”며 “미국은 개별 근로자에게 생산성 평가에 기초한 임금을 지급해 해고 유인 자체가 작다”고 지적했다.
강한 정규직 보호도 한몫한다. 한 연구위원은 “해고가 지나치게 어려우면 채용도 감소한다”며 “결과적으로 일부 재직자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비용을 구직자 전반이 부담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직무급제를 민간으로 확대하고 정규직 고용을 유연화하는 노동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게 KDI의 설명이다. 세부적으로 △대기업·공공 부문 정규직 임금의 연공성 완화 △해고 과정의 예측 가능성 제고 △비정규직의 경우 보호 방안 강화 △고용 안정망 보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복직과 정규직 일자리로의 재취업만 수월해져도 여성의 경력단절이 크게 감소하고 저출생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한 연구위원의 판단이다. 그는 “미국은 주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연방 차원에서는 12주의 무급 육아휴직만 규정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 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면서도 “그럼에도 노동시장이 유연해 복직이나 재취업이 수월해 출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처럼 경직된 노동구조에서는 정년 연장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해석도 덧붙였다. 한 연구위원은 “64세 남성 임금 근로 경험자 중 정년퇴직자 비중은 26%에 그치고 여성은 7%에 불과하다”며 “(현 상황에서의) 정년 연장은 그 혜택이 소수의 근로자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