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인천광역시 남동구에 있는 ‘남동 국가 산업 단지’. 산단 안으로 들어서자 인도를 뒤덮은 불법주차 차량과 녹이 슬고 칠이 벗겨진 벗겨진 공장 외벽이 눈에 들어왔다. 40년 동안 국가 경제 발전을 묵묵히 뒷받침해 왔지만 고된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이면서 인근 도시와 단절된 ‘어둠의 섬’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산단 중심부에 이르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3층 높이의 공장 모서리 전체에 그려진 거대한 벽화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대형 수조에 맑은 탄산수 속 라임이 담겨 있는 그림이 그려진 이곳은 스파클링 정수기, 전기냉온수기를 생산하는 영원코퍼레이션의 본사와 생산 공장이 위치한 곳이다. 벽화는 낡고 외진 거리에 활기를 불어 넣는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의 이색 작품처럼 남동 산단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었다. 해가 지자 또 한 번 반전이 나타났다. 벽화 맞은편 조명이 켜지자 수조 속에 담긴 물이 푸른 빛을 내며 출렁거리는 듯이 보였다. 퇴근하던 산단 근로자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빛이 빚어낸 이색 작품을 감상했다.
차연구 영원코퍼레이션 기술연구소 부장은 “남동산단은 수십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곳인줄 알았는데 이러한 아트 프로젝트를 통해 산단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며 “청년들이 찾을 수 있는 산단으로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산업단지공단 인천지역본부가 인천시와 함께 산단 내 경관 조명을 설치하는 ‘아이-라이팅(I-Lighting) 프로젝트’에서 비롯됐다. 그간 남동산단은 인근 도시 근로자들의 소중한 일터임에도 밤이 되면 우범지대 같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공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같은 부정적 이미지는 젊은 구직자들로 하여금 산단 취업을 주저하게 했고, 지역 주민들까지 산단을 기피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에 산단공은 남동산단과 창원국가산업단지를 ‘밤에도 빛나는 산업공간’으로 이미지 전환 위해 이번 프로젝트 진행했다. 예술 작가와 함께 공장 특색에 맞는 예술벽화를 그리고 밤에는 조명을 이용해 ‘빛의 거리’로 변화시켜 노후산단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겠다는 목표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산단 곳곳에 걷고 싶은 거리와 청년복합문화센터를 조성해 청년 친화적인 산단으로 개조하는 이른바 ‘산리단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현재 남동산단 안에는 영원코퍼레이션, 장인가구의 벽화 외에도 보행교량에도 조명이 설치돼 야간에 감성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 이러한 예술적인 공간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예정이다. 분위기가 달라지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한 20여 곳의 기업들이 프로젝트 동참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박성길 산단공 인천지역본부장은 “산업단지를 문화요소가 도입되는 공간적 요소로 변화시켜, 산업단지 근로자의 근로 만족도 향상과 청년유입을 유도하겠다”며 “지자체, 문화관련 기관 등과 함께 산리단길 프로젝트에 참여해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장관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경남 창원의 창원산업단지를 함께 방문해 입주기업 대표, 청년근로자 및 문화예술인 등과 도시락 간담회를 가진 후 산단에 문화를 더해 가는 노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인천=노현섭 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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