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반도체 기업의 제조 시설 투자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두고 내부 협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안팎에서는 공격적인 반도체 보조금 지원을 통해 중국 등과의 격차를 확 벌려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3일 정부에 따르면 기재부와 산업부는 반도체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할지를 두고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7일 정부가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 회의를 통해 반도체·2차전지 등 첨단 전략 산업 투자분에 대한 보조금 정책 추진 가능성을 시사한 데 따른 후속 작업이다.
반도체 산업 육성이라는 큰 취지에는 두 부처 모두 공감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방안에서는 다소 시각차가 있다. 기재부는 재정 건전성을 염두에 두는 모습이다. 한정된 예산을 고려하면 이미 궤도에 오른 제조 부문보다는 한국 반도체 생태계에서 취약한 고리로 꼽히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보조금보다 세제 혜택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현재 정부는 반도체 설비투자에 15%(대기업 기준)의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산업부와 재계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보조금 지원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 역시 과감한 보조금 지원을 통해 이 같은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는 뜻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반도체 노광장비 부문 세계 1위 업체인 ASML이 외국으로의 본사 이전을 검토한다고 밝히자 25억 유로(약 3조 7000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제조 기술 역량과 보조금 지급은 별개라는 의미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반도체 대기업 연합체인 라피더스에 최대 5900억 엔(약 5조 3000억 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내년 정부 예산이 684조 원 수준으로 추정되고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조 단위 보조금 지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도 있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우리 입장에서는 반도체와 첨단기술 부문에서 중국의 추격을 뿌리칠 시간을 번 셈”이라며 “공격적인 보조금 지급을 통해 기술 격차를 벌려 놓아야 향후 중국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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