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해 말에 10㎚(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6세대(1c) D램을 양산한다. 삼성은 올해 초부터 회복세를 띠고 있는 D램 시장에서 ‘초격차’ 제조 기술을 경쟁 회사보다 먼저 적용해 리더십을 이어가는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글로벌 반도체 학회 ‘멤콘 2024’ 연설을 통해 연말에 이 D램을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10나노급 6세대 제품에 대한 구체적인 양산 계획을 공개한 회사는 삼성전자가 처음이다.
삼성전자가 이 제품을 계획대로 양산한다면 현재까지 가장 최신 제품인 10나노급 5세대 제품이 만들어진 지 1년 만에 차세대 메모리 칩을 출시하는 셈이다. 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전작보다 더 많은 회로를 극자외선(EUV) 기술을 활용해 만든다는 것이다.
EUV를 적용하면 동일한 칩 면적에도 기억 소자를 더욱 정밀하게 배치할 수 있어 기존보다 용량이 큰 제품을 한층 수월하게 생산할 수 있다. 고용량 메모리가 필요한 온디바이스 인공지능(AI) 기기에 가장 먼저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개선된 EUV 기술로 미세 회로를 기존 제품보다 더 매끈하게 만들 수 있다. 생산성은 물론 칩의 전력효율까지 향상돼 완성도와 원가 경쟁력에 큰 도움이 된다.
삼성전자는 멤콘 2024에서 10나노급 6세대 이후의 제품 로드맵도 공개했다. 차세대 제품인 10나노급 7세대 제품은 2026년쯤 양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제품에는 D램 속 9개 층에 EUV를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2027년 이후에는 10나노대를 넘어 한 자릿수대 나노 공정을 통한 D램 생산에도 도전한다. 미래 EUV 기술로 주목받는 하이(High)-NA EUV 공정 도입에 대한 가능성도 시사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수요가 회복되는 흐름을 보고 기술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체 D램 시장 중 80~90%를 차지하는 서버·스마트폰·전자기기용 범용 D램 부문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선단 기술 개발과 함께 방대한 생산능력과 공정 효율을 앞세워 다가올 D램 슈퍼 사이클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포부로 읽힌다.
차세대 D램 조기 양산 승부수…"원가 끌어내려 시장 잠식"
삼성전자가 연말에 진행할 차세대 D램 양산을 연초부터 공개한 것은 메모리 분야에서 리더십을 지켜내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초격차 기술로 일단 라이벌들의 기세를 꺾은 뒤 압도적인 생산 능력으로 원가를 낮추면서 동시에 수요에 대응하는 삼성의 전매특허 전략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여기에 더해 비장의 무기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프로세싱인메모리(PIM), 3D D램 등 새로운 형태의 메모리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첨단기술과 생산 능력 다잡는다=삼성전자는 D램 시장에서 45% 이상의 점유율을 보유한 자타 공인 메모리 1위 회사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전략의 핵심에서는 라이벌 회사보다 한참을 앞서나간 기술로 초격차 선두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삼성은 10㎚(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5세대 D램에서 경쟁사와 똑같은 극자외선(EUV) 기술을 쓰면서도 현존 최대 용량인 32기가비트(Gb)를 가장 먼저 구현하기도 했다. 장비를 뛰어넘는 생산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연말 양산하게 될 10나노 D램에도 EUV는 물론 기억 소자에서 전하 알갱이가 새어나가는 것을 효율적으로 막아내는 하이-K 메탈게이트(HKMG) 등 최고의 기술을 총집결한 제품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D램 시장에서 리더십을 차지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기술 개발에서 이어지는 압도적인 생산 능력 확보다. 삼성전자는 호황기였던 2022년 기준 월 67만 장의 웨이퍼를 생산했다. 당시 D램 2위 SK하이닉스(월 41만장)보다 생산 능력이 60% 이상 차이가 났다.
풍부한 생산 능력은 원가 절감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장치산업으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메모리 사업은 생산 능력이 뛰어날수록 단가 경쟁에서 유리해져 이윤을 더욱 많이 남길 수 있다. 이번에도 삼성전자는 10나노급 6세대 제품에 대한 양산 준비가 끝나면 빠른 속도로 첨단 생산 라인을 갖춰 경쟁사보다 빠르게 수요에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감산 영향으로 월 45만 장까지 줄였던 삼성전자는 올해 4분기 D램 생산량을 월 70만 장 수준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평택 공장 등 거대한 생산 라인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HBM 라인 확충에 집중하고 있는 경쟁사들과 비교하면 범용 D램 호황 사이클에서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올해 설비 증설에서 10나노급 4세대, 5세대 D램보다 6세대 D램 투자에 더욱 집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원가를 끌어내려 시장을 독식하겠다는 포석”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D램 기술도 출격 대기=삼성전자는 범용 D램 외에 인공지능(AI) 시대에서 주목 받는 D램 기술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2019년 HBM 개발팀 해체로 SK하이닉스에 지금까지 주도권을 빼앗겨버린 뼈아픈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우선 삼성전자는 최근 AI 시대에서 가장 각광 받는 HBM 메모리 생산 라인을 빠르게 증설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1월에만 해도 기존 생산 능력보다 2.5배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지난달에는 2.9배 늘리는 것으로 목표치를 수정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기술 측면에서는 차세대 HBM 제조 기술인 하이브리드 본딩으로 16단 HBM 샘플까지 만들면서 역전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HBM과 연산 장치 간 병목현상을 줄이는 HBM-PIM 기술도 고도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설치를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CXL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붙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CXL 모듈인 △삼성 CMM-D △삼성 CMM-DC △삼성CMM-H △삼성 CMM-HC 등 4개 상표를 출원했다.
D램 칩을 쌓는 것이 아닌 D램 내부에서 기억 소자를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3D D램 연구에도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3D D램의 초기 버전인 수직채널트랜지스터(VCT) D램을 내년에 처음으로 선보인 뒤 2030년께 3D D램 상용화에 도전할 계획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새로운 소자 구조를 적용한 D램을 상당히 빠른 속도로 개발하고 있다”면서 “최근 수년간 위협을 받았던 초격차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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