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올 하반기부터 시행되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목표 주가순자산비율(PBR)을 공시하는 것에 대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목표 PBR을 공시한 후 달성하지 못했을 때 불성실 공시 법인 지정 및 투자자들로부터 피소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거래소는 PBR 등 각종 투자 지표 대신에 성장 전략 등 정성적 지표를 공시해도 된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밸류업 자문단은 최근 거래소에 기업들이 목표 PBR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피소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자문단이 이런 의견을 전달한 데는 기업이 PBR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금융 당국 차원에서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낮지만 투자자들이 이를 허위 공시로 판단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데 따른 것이다. 기업들로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동참하면서 불필요한 소송 리스크를 져야 하는 점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고 증시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차원에서 추진하는 정책이다. 일본 증시 호황과 맞물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가 지속적으로 PBR이 1배를 밑도는 기업 등 개선이 필요한 상장사에 대해서는 기업가치 제고 공시 등을 강력히 요청한 것을 참고했다.
기업들이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인 목표 PBR 공시에 난색을 표하면서 정부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이 크게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효과는 지속된다고 보고 있지만 제22대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상황에서 정부 추진 과제를 기업이 얼마나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밸류업 프로그램이 급히 추진됐다”며 “목표 PBR을 공시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거래소 측은 일단 목표 투자 지표와 함께 기업의 성장 전략 등 정성적 지표와 주주 환원책을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해 공시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투자 지표 공시가 아니더라도 기업가치를 높일 방법은 많다는 설명이다. 사실상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업 IR을 강화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자문단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투자 지표를 공시하는 것에 대해 크게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성장 전략이나 매출 등을 공시하는 방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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