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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출생기본소득 30조 필요…“현금 지원보다 근로문화 혁신”

[국정리셋 대전환] <4> 저출생 대책 옥석 가려라

여야 앞다퉈 쏟아낸 총선용 대책

파격지원 필요하지만 재원 '막막'

효율 높은 정책 가려 선별지원을

양육부담 줄일 직장 분위기 필요

눈치 안보고 출산·육아 전념토록

정치권 나서 '대타협' 이끌어내야

국회의사당 전경. 연합뉴스




총선 당시 여야는 앞다투어 저출생을 공약 전면에 내세웠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인구부 신설과 출산휴가·육아후직 제도 개편을 중심으로 하는 저출생 정책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저출생 정책에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기본 시리즈’를 붙여 공약집에 실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초저출생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상당하다는 것을 의식한 행보였다.

문제는 재원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저출생이 심각해 파격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매년 수십조 원이 투입될 수 있어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당 저출생 공약에 공통분모가 상당하므로 이를 중심으로 실효성 높은 저출생 정책을 추려 여야가 함께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가정 양립 확립의 경우 정책 지원을 넘어 근로 문화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정치권이 중심이 돼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16일 서울경제신문 추산에 따르면 민주당의 저출생 공약 중 ‘출생기본소득’을 추진하는 데만 연 최대 29조 7800억 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생기본소득에는 아동수당을 현행 만 8세 이하 월 10만 원 지급에서 만 18세 이하 월 20만 원 지급으로 확대하는 ‘우리아이키움카드’와 만 18세 이하 아이들에게 매달 월 10만 원씩 적립해주는 ‘우리아이자립펀드’ 등이 담겼다. 모든 신혼부부에게 가구당 10년 만기 1억 원의 대출을 제공하고 자녀 출산 시 순차적으로 이자와 원금을 삭감해주는 ‘결혼·출산지원금’도 포함됐다. 소위 ‘헝가리식 저출생 대책’으로 알려진 정책이다. 지난해 기준 만 18세 이하 인구가 762만 명에 달하고 연간 혼인 건수가 19만 3657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막대한 재정지출이 불가피하다.

여당 역시 육아휴직 급여 인상과 배우자 1개월 출산휴가 의무화를 약속했다. 육아기 단축 근로 급여를 인상하고 육아동료수당을 활성화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늘봄학교 시설을 확충하고 비용 또한 단계적으로 무상 전환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고용보험기금·지방교육재정교부금·주택도시기금 등 정부가 운용하고 있는 각종 기금을 통해 재정을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합계출산율 제고와 관련해 현금성 지원만이 해결책은 아닌 만큼 효율성이 높은 정책을 가려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확산하고 있다. 실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는 “막대한 재정이 투입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도의 효과를 따져 신중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유혜정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출생 해결에 여야가 따로 있겠느냐”면서도 “공약 중 실효성 높은 것을 여야가 함께 가려내면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책 수요자별로 상황을 잘 구분해 맞춤형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대기업의 경우 제도는 잘 갖춰졌는데 남성 근로자들이 불이익 등을 의식해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며 “기업 내 일·가정 양립 현황을 지표로 공개하게 하거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에 포함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어 “공공기관의 경우 남성 근로자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은 여력이 부족해 일·가정 양립 확립에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홍 교수는 “기업 규모가 작으면 대체 인력 확보가 쉽지 않다. 정부가 비용을 지원해줘도 쉽게 해결이 안 된다”며 “차라리 중소기업은 육아기 유연 근무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가정 양립 확립이 결국 기업의 근로 문화 혁신과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이 사회적 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센터 연구위원은 “이제는 개별 정책보다 노동시장 전체로 시각을 넓혀야 할 때”라며 “(저출생 대책이 쏟아지다 보니) 더 이상 국민들이 개별적인 정책에 반응하지 않는다. 사회구조를 큰 틀에서 개혁하자는 움직임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육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치권은 물론 경제계와 노동계가 함께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연구위원은 “저출생 관련 연구를 하기 위해 인터뷰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주52시간제 도입이 육아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며 “가사를 챙기고 육아에 집중할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개별 정책을 넘어) 사회구조적인 개편이 필요한 영역이 많다”며 “총선이 끝났으니 각계가 모여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실천해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사진>

2월 28일 서울 시내의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 등 관계자들이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 모두 총선 과정에서 육아휴직 확대, 육아기 단축 근로 등을 저출생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정작 정부가 일·가정 양립을 위해 발의해둔 법안은 국회에서 6개월 넘게 논의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저출생 극복이 시급하다는 데 여야 모두 이견이 없는 만큼 21대 국회 내에 입법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10월 5일 발의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국회에서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았다. 개정안에는 배우자 출산휴가 분할 횟수를 현행 1회에서 3회로 늘리고 난임치료휴가를 연간 3일에서 6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육아기 단축 근로 대상 자녀를 만 8세 이하로 규정한 것도 만 12세 이하로 조정했다. 미사용 육아휴직이 있을 경우 그 기간의 2배만큼 육아기 단축 근로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또한 포함됐다.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 절차만 거친 뒤 계류 중이다. 올해 들어 정치권이 선거전에 몰두하느라 환노위가 한 번도 열리지 않은 탓이다. 고용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이미 하반기에 개정안 내용을 시행하기 위한 예산을 잡아둔 상황”이라며 “개정안에 대해 여야 간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안다. 21대 국회 임기 내에 법안 논의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시행령으로 먼저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입법 예고 중”이라며 “육아기 단축근무 시 동료 업무 분담 지원금을 신설하고 단축 급여 지급 시간을 주5시간에서 주10시간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고용부의 올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급여 관련 예산은 1490억 원으로 지난해(937억 원)보다 553억 원 더 편성됐다.

여야는 모두 남은 임기 내에 개정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환노위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이수진 의원은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해야 할 법안”이라며 “정부안 외에 일·가정 양립을 위해 의원들이 발의해둔 법안이 상당히 많다. 다양한 내용을 함께 논의해 입법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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