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의 마법 양탄자를 탄다면 어떤 느낌일까.” 어릴 적 만화영화를 보며 호기심에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영국 최고급 브랜드로 잘 알려진 롤스로이스의 첫 순수 전기차 ‘스펙터(Spectre)’를 만나면서다. 억 소리 나는 이 차량은 전기모터를 날개 삼아 미끄러지듯 부드러운 승차감과 정숙성을 극대화하며 마법 양탄자를 타고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지난 2일 스펙터 운전대를 잡고 서울 강남에서 강원 원주까지 약 98㎞를 달렸다.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첫 느낌은 전기차보다는 내연기관차에 가까웠다. 전기차의 급가속이나 튀어나가는 움직임 없이 묵직하게 속력을 냈기 때문이다. 도심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해도 덜컥거림은 느껴지지 않았고 편안한 주행감을 선사했다.
도심을 빠져나와 고속도로 위를 달릴 때는 매력이 배가 됐다. 우선 고속주행에서도 풍절음과 같은 외부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정숙성을 유지했다. 차체 바닥에 깔린 700㎏ 무게의 배터리를 흡음재 용도로 활용하면서 도로 노면으로부터 올라오는 마찰음도 함께 잡았다. 밖에서 차량 내부로 들어오는 소음을 차단한 상태에서 18개 내장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음질의 사운드는 운전하는 재미를 한껏 높였다.
주행 성능도 뛰어나다. 차체 무게는 2945㎏에 달했지만 가속을 하는데 버거워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실제로 스펙터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속도를 끌어올리는 데 단 4.5초면 충분할 정도로 폭발적인 추진력을 자랑한다. 차체 강성은 기존 롤스로이스 차량 대비 약 30% 강화하면서 급한 코너링 시에도 단단하게 버티며 민첩하게 빠져나갔다. 운전자 상황이나 도로 환경에 맞춰 반응하는 ‘플레이너 서스펜션’을 탑재해 롤스로이스 특유의 ‘매직 카펫 라이드’ 승차감을 제공했다.
원주에 도착해 살펴본 스펙터의 외관은 한 눈에 봐도 롤스로이스를 인지할 수 있는 정체성을 안고 있었다. 전면부는 롤스로이스 팬텀 쿠페를 연상케 했다. 역대 가장 넓은 그릴과 분리형 헤드라이트를 적용해 웅장한 크기와 2m의 위엄 있는 전폭을 강조했다. 측면 하단부는 복잡한 장식 대신 가벼운 표면 마감으로 마무리했다. 지붕부터 후면까지 유려하게 떨어지는 루프라인은 우아한 측면 실루엣을 완성했다. 양산형 2도어 쿠페 모델 중 최초로 23인치 휠을 장착해 웅장한 존재감을 부각했다.
실내 공간은 최고급 브랜드의 정수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코치도어와 차량 천장에는 수천 개의 별이 빛을 내면서 신비로운 밤하늘을 옮겨 놓은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시트 가죽은 운전자의 몸을 포근하게 감쌌고 원목 장식과 운전석 양털 매트 등도 돋보였다. 기술적으로도 진보한 비스포크 옵션을 제공한다. 롤스로이스 최초로 적용된 디지털 비스포크 계기판은 디지털 기능과 내부 인테리어 간의 완벽한 통합을 보여준다. 고객은 총 10가지 색상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으며 각 색상은 실내 가죽 색상과 긴밀한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했다. 영국의 맞춤 정장에서 영감을 얻어 새롭게 제작된 앞 좌석 시트의 일부분 또한 원하는 컬러로 적용할 수 있다.
실내에는 새로운 디지털 럭셔리 아키텍처도 적용됐다. ‘스피릿’이라고 명명된 해당 디지털 기능은 자동차 기능 관리는 물론 롤스로이스 ‘위스퍼스’ 앱과 연동된다. 고객들은 원격으로 상호 작용할 수 있고 브랜드 전문가들로부터 실시간 정보도 제공받을 수 있다.
스펙터는 120년 브랜드 역사상 가장 까다로운 개발 과정을 거친 모델로 꼽힌다. 총 250만㎞를 달리며 400년 이상 분량의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축적했다. 혹서기·혹한기 테스트를 통해 영하 40도에서 영상 50도에 이르는 극한의 온도를 견디고 빙설·사막·고산지대·대도시 등 다양한 주행 환경을 넘나들었다.
스펙터의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는 복합 383㎞다. 파워트레인은 최고 출력 430㎾와 최대 토크 91.8㎏.m의 성능을 발휘한다. 스펙터에 대한 상담 및 주문은 전국 롤스로이스모터카 공식 전시장에서 가능하며 시작 가격은 6억 2200만 원부터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