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치솟는 식품 물가를 잡기 위해 유통 및 식품업계를 계속 압박하면서 제품 가격을 인하하거나 가격 인상 시점을 미루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 원물 및 부자재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 제품 가격 인상은 시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오는 3일 식품 및 외식업계 업체들을 소집해 가격 인상을 점검할 예정이다. 지난 3월 19개 주요 식품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한 데 이어 또다시 업계를 불러모으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달 유통업계를 소집해 간담회를 갖고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
실제로 장류 등 조미료 상품군은 지난 4월 가격을 올리려다 정부 요청에 인상 시점을 늦춘 것으로 확인됐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샘표는 5월 중 장류 가격 인상을 목표로 대형마트 등에 관련 공문을 보내고 협의 과정을 거쳤으나 검토 끝에 가격 인상 시점을 늦추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당부가 있고 난 후 현재까지 가격 인상이 계획된 품목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롯데웰푸드 역시 초콜릿의 주원료인 코코아(가공된 카카오 열매) 시세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자 가나초콜릿, 빼빼로 등 초코 과자류 17종의 제품 가격을 이달부터 올려 받을 예정이었으나 정부 요청에 따라 인상 시기를 1개월 늦추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해당 제품은 편의점을 시작으로 오는 6월 1일부터 제품 가격이 오를 전망이다.
동원F&B는 지난 2월 자영업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덕용(대용량) 1.88㎏ 참치캔의 납품가를 약 9% 낮췄다. 이례적으로 큰 폭으로 가격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외식 물가 안정 효과는 제한적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다른 식재료 값이나 전기 요금, 인건비가 올랐기 때문이다.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김밥이나 김치찌개 등 캔 참치가 들어가는 식당 메뉴에서 가격이 하락한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압박에 식품 가격 인상 시점은 일단 미뤄졌지만 사실상 오를 일만 남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올해 들어 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맥도날드는 2일부터 16개 메뉴 가격을 최대 400원 올린다. 굽네치킨은 지난달 9개 제품 판매가를 일제히 1900원씩 인상했다. 파파이스도 치킨과 샌드위치 등의 가격을 평균 4% 높였다. 노브랜드버거 역시 지난 2월 말부터 30여 종 메뉴 값을 평균 3.1% 올렸다.
원재료 수급이 어려워진 품목을 중심으로 인상 요인도 산적해 있다. 카카오·커피원두·올리브유·마른김 등을 제품 생산에 활용하는 제조사들은 “가격 인상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례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런던국제선물거래소에서 믹스커피용 원두 ‘로부스터’ 품종 가격은 지난달 29일 기준 톤(t)당 4164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64.3% 올랐다. 이는 16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같은 기간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데 쓰는 ‘아라비카’ 시세도 19.8%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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