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자산 총액 5조 원 이상인 대기업 동일인(총수) 지정에서 4년 연속 제외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기 위해 시행령 개정 등 제도 정비에도 나섰지만 제도 변경의 원인이 된 김 의장은 정작 동일인 지정을 피해갔다.
15일 공정위는 올해 총 88개 기업집단을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통지했다고 밝혔다. 대기업집단과 소속회사 수는 전년(82개, 3076개) 대비 각각 6개, 242개 증가했다.
이번 지정에서는 케이팝(K-POP) 문화 확산과 엔데믹 이후 소비심리 회복으로 인한 엔터테인먼트와 호텔·관광 산업의 성장이 눈에 띄었다. 올해 대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된 집단은 △하이브 △소노인터내셔널 △원익 △파라다이스 △현대해상화재보험 △영원 △대신증권 등이다. 이중 하이브는 엔터테인먼트 주력집단 최초로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쿠팡과 두나무는 올해도 자연인이 아닌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공정위는 쿠팡이 자연인이 있는 경우에도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예외조건을 모두 충족했다고 설명했다. 예외조건은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이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고 △그의 친족도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임원 재직 등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채무보증이나 자금대차가 없는 등 사익편취 우려가 없는 경우다.
공정위 관계자는 “쿠팡 주식회사와 김범석 의장은 시행령상 예외요건을 인지하고 있고 친족의 국내 계열회사 임원 미재직과 경영 미참여 사실, 위반 시 동일인 변경 및 제재 가능성에 대해 명확히 확인하고 서명한 바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올해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 요건이 기존 ‘자산 규모 10조 원 이상’에서 ‘국내총생산(GDP)의 0.5% 이상’으로 바뀌었다. 정액으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안을 판단하는 것이 경제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지적에 따라 개정된 제도가 처음 적용됐다. GDP의 0.5%인 10조 4000억 원으로 기준이 상향 조정 되면서 한국앤컴퍼니그룹(10조 3800억 원)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서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전환됐다. 에코프로는 지난해 최초로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이후 올해 순위가 62위에서 47위로 15위 상승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동일인 지정의 경우 통상 재벌 총수로 불리는 자연인이 지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쿠팡이 2021년 기업집단으로 지정된 이후 3년간 미국 국적인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못했다.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제도적 미비’가 이유였다. 미국 국적인 김 의장에게 한국의 규제를 가하면 통상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공정위는 이달 7일 내외국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대기업집단 동일인 판단 기준을 담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외국인을 대기업 총수로 지정할 수 있도록 시행령까지 개정했지만 이번에도 공정위는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공정위는 김 의장의 동생인 김유석씨가 실질적으로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김유석 씨가 글로벌 물류 효율 개선 총괄로, 그의 배우자는 인사관리전산시스템운영 총괄로 근무하고 있다고 소명을 받았다”면서 “쿠팡 주식회사는 조직개편 인사 등 경영상에 대해서는 이사회 또는 대표이사가 결정하고 있고 동생 내외는 이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소명하고 있다”고 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