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0일 “안보적 시각에서 다뤄야 할 경제문제가 점차 늘어나고 있어 대통령실이 컨트롤타워가 돼 경제안보 통합 전략의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시스템 정비가 선결 과제”라고 밝혔다. 경제안보의 경우 외교부와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통상교섭본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주요 부처들이 얽혀 있는데 지금 같은 구조로는 대응이 어렵다는 얘기다. 정부 내에서조차 혼선이 있음을 자인한 셈이다.
실제로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은 한두 번이 아니다. 정부 안팎에서는 △느린 대응 속도(라인야후 사태) △냉온탕식 정책(해외 직구 금지, 연구개발 예산) △근시안적인 대응(반도체 보조금, 산업통상 정책) △부처 간 비협조(플랫폼법, 공정위·방통위 판매장려금, 금융 당국 내 부동산 PF 이견) 등을 대표 사례로 들고 있다.
해외 직구 대책만 해도 정부 정책 추진 과정의 난맥상을 집약해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환경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서 면밀히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대책을 공개했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국무총리실이 주도해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이 발표를 해버린 형국이 돼버렸다”며 “올해 들어 내각 인사 개편이 계속 멈춰 있는 상태인데 인적 쇄신을 통해 부처별 정책 리더십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개발(R&D) 예산도 그렇다. 대통령실은 널뛰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학계에서는 지난해 R&D 예산을 대대적으로 삭감했던 것을 고려하면 정책 방향이 180도 바뀌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역시 정책 추진 근거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다.
느린 대응 속도도 문제다. 라인야후 사태의 경우 네이버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는 소문이 흘러나온 뒤에야 정부의 공식 방침이 나왔다. 최근 미국과 일본·네덜란드가 반도체 보조금 등 직접 지원을 포함한 각종 인센티브를 내놓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뒤늦게 대출을 중심으로 한 10조 원 규모의 지원책을 내놓았다. 이마저도 2030년 미국과 일본이 본격적으로 자국 내 생산을 시작하는 시점 이후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근시안적인 정책이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단말기 판매장려금도 같은 맥락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동통신 3사가 2015년부터 판매장려금과 거래 조건, 거래량 등에 대한 담합을 진행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방통위는 동의하지 않는다.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도 사정은 비슷하다. 공정위는 플랫폼 독과점 규제를 막기 위해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나 산업부는 통상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두고도 속도를 내겠다는 금융감독원과 감내 가능한 선에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금융위원회의 신호가 엇갈린다.
정부 안팎에서는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정책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총선 이후에도 인사 개편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각 부처 리더십에도 문제가 생기고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엄밀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내각 인사 개편이 이뤄졌던 건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최상목 부총리)와 농림축산식품부(송미령 장관), 해양수산부(강도형 장관) 등이 취임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는 “한덕수 국무총리도 사표를 낸 상태에서 정책 추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올바른 전문가로 인사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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