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사이언스(008930) 주가가 불과 두 달 만에 30% 급락하면서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 주식담보대출에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경보가 들어왔다. 주가 하락으로 지분 가치가 떨어지면 기존에 받은 주담대를 일부 상환하거나 담보를 추가로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금융사가 반대매매로 대출금을 회수하게 된다. 기존 주담대의 마진콜은 3만 원 초반에 집중된 것으로 전해졌다. 임종윤·임종훈 형제가 극적으로 주주총회에서 승리해 이사회에 입성한 뒤 주가가 하락하면서 소액주주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3월 28일 4만 4350원에서 이날 3만 1350원으로 29.3% 하락했다. 한미 오너 일가 갈등이 주총을 계기로 일단락되기는커녕 잔여 상속세를 해결하지 못해 ‘오버행’ 우려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오버행이란 언제든 시장에 쏟아져 나올 수 있는 잠재 주식 매물을 뜻한다.
통상 기업 오너들은 의결권을 유지하면서 자금 확보가 용이해 주담대를 많이 사용한다.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 임종윤 한미약품 사내이사,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 등 오너 일가는 지금까지 상속세 2677억 원을 납부하기 위해 대부분을 은행·증권사 주담대로 활용했다. 올 3월 기준 형제 측 2749억 원과 모녀 측 2630억 원을 합하면 5379억 원에 달한다. 금리는 5~6%대여서 월 이자만 20억 원에 육박한다.
문제는 급격한 주가 하락으로 인해 기존 대출의 마진콜 문제가 불거진 점이다. 기존 주담대 담보유지비율(LTV)은 최대 170%까지 적용했는데 주가 3만 원에서 3만 2000원 사이에 마진콜 물량이 몰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임 대표는 이달 20일 자식들 지분을 대여해 보유 주식 78만 4057주(1.12%)를 담보로 150억 원을 추가로 빌렸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턱밑까지 한도가 차 더 이상 추가 대출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임종윤·임종훈 형제의 경우 한미사이언스 1987만 8415주(28.42%)를 보유하고 있는데 주요 계약 체결 주식 비율은 올 1월 25.95%(1815만 452주)에서 최근 28.31%(1980만 5942주)로 2.36%포인트 높아졌다. 사실상 대부분을 담보로 맡긴 것이다.
오너 일가는 올해 상속세 700억 원의 납부 시한을 세무 당국과 협의해 11월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몇 달 뒤로 급한 불을 넘긴 셈이다. 그럼에도 아직 한미 일가는 상속세 2644억 원이 남아 있는 상태다. 가족 간 갈등이 계속되는 한 베인캐피탈,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EQT파트너스 등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통한 투자 유치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경영 비전 발표 효과도 신통치 않다. 최근 한미사이언스는 사내망을 통해 임 대표가 “과감한 인수합병(M&A)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겠다”는 미래 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핵심 계열사 ‘온라인팜’이 온라인 점유율 1위라는 점도 적극 홍보했지만 주가에는 효험이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그룹 주력 분야인 비만 치료제 등의 신약 개발에 대한 수천억 원의 자금 소요 대책과 세밀한 투자 계획이 없어 직원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주가 하락으로 반대매매까지 발생하는 사례가 흔하지는 않다. ‘기업 사냥꾼’ 칼 아이컨은 지난해 투자회사인 아이컨엔터프라이즈(IEP) 주식 60%(총액 7조 8000억 원 상당)를 담보로 은행에서 30억 달러(약 3조 9000억 원)를 빌린 뒤 주가가 40% 폭락하자 은행 측이 추가 담보를 요구한 적이 있다. 국내에서는 코스닥 바이오 기업 엔케이맥스의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박상우 대표가 반대매매로 지분율이 12.94%에서 0.01%로 줄어들기도 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