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입장에서나 국가 입장에서나 유동성이 몰릴 거면 부동산·코인보다는 주식으로 몰리는 게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어느 주식 투자 전문가는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주식 투자에 세금을 매긴다는 것은 ‘투자자에게 세금을 매긴다(부자 과세)’는 시각뿐만 아니라 투자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금융업의 본질은 각 경제 주체들이 원활하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특히 주식 시장은 산업금융으로써 기업 자금을 융통하는 역할을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큰 원인 중 하나는 산업금융에 흘러들어가야 할 돈이 주택에 묶여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가계 자산의 80%가 부동산으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서울, 강남 불패’ 신화에서 기인한다.
국내에서 시가총액 20위권 기업 중에 1990년대 이후 설립된 기업은 대기업 계열사를 제외하고는 네이버·카카오·셀트리온이 전부다. 미국은 엔비디아·구글·아마존·브로드컴·넷플릭스·티모바일이 1990년대에, 메타·테슬라는 2000년대 설립됐다. 한때 유통 업계의 ‘혁신’으로 불리던 쿠팡도 미국으로 넘어가버렸다. 논란이 많지만 국내에서는 제값을 못 받을 것 같으니 큰 시장으로 갔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일론 머스크가 한국에서 테슬라를 세웠다면 지금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김상배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 교수는 “테슬라의 컨퍼런스콜에 갔더니 질문 10개 중 7개는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서 답을 하더라. 테슬라의 기술을 모두 머릿 속에 차고 있으니까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과 전기차 기술을 훤히 꿰차고 있는 천재라면 국내 재계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것보다 세계의 부호 반열에 오르는 게 합리적인 선택임을 잘 알 것이다.
자산운용사 GMO의 에드워드 챈슬러 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저서 ‘금융투기의 역사’를 통해 투기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면서도 그것의 긍정적인 역할을 나지막이 말한다. 미국의 철도 혁명 당시 어느 노선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구의 몇 바퀴를 돌 만한 대규모 철로가 깔릴 수 있었던 것은 은행이나 국가 차원에서는 조달할 수 없는 대규모 자본 조달을 주식시장이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전 세계는 다시 대격변기를 맞고 있다. 주식시장은 기대감과 꿈을 먹고산다. 그 기대감에는 불로소득을 거머쥐겠다는 투자자의 욕심도 있지만 재능과 노력으로 혁신을 일구고 정당한 대가를 받겠다는 젊은 기업가들의 꿈도 있다. 그 꿈을 가장 크게 밀어줄 수 있는 금융시장을 가진 곳이 미래 산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부자 증세 프레임이 또 한번 미래 산업의 경쟁력을 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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