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부자 감세라는 이유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유예 요구를 일축하면서 금투세가 예정대로 내년부터 실시될 경우 중산층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세무 업계에 따르면 내후년 연말정산부터 국내 주식과 채권, 파생상품 등에서 100만 원 초과 수익을 거둔 부모와 배우자, 자녀는 소득세법상 부양가족 인적공제(1인당 150만 원)를 받을 수 없다. 금투세는 연 5000만 원을 초과한 금융 상품 투자 이익에 20~25%의 세금을 매긴다. 금투세가 시행되면 수익이 5000만 원을 밑돌아도 해당 수익이 ‘소득’으로 잡히기 때문에 세금은 내지 않더라도 연소득 100만 원 초과 시 가족 인적공제를 받을 수 없다는 조항에 걸린다.
예를 들어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전업주부 아내를 둔 연봉 6000만 원 직장인이라면 부인이 1년에 100만 원 넘게 벌면 인적공제 탈락으로 연간 36만 원의 추가 부담이 생긴다. 주식에 투자하는 가족이 2명이면 금액이 72만 원으로 불어난다. 금투세가 중산층 증세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31일 금투세와 관련해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연 뒤 기자들과 만나 “연말정산 공제 등에서 손해를 입는 사람이 몇 십만 명 단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는 시장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었다”며 “투자자들이 주식으로 5000만 원이 넘는 이익을 얻으면 세금을 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것(손실 가능한 주식)을 팔아서 이를 피하려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금투세 시행 시 건강보험료가 급증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끊이지 않는다. 현재 주식·부동산 양도소득은 건보료 계산에 반영되지 않는다.
자금 이탈 우려도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금투세가 도입되면 국내 증시와 파생상품·펀드 시장에서 자금 유출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금투세 폐지를 논의하되 합의 시간이 모자라면 시행을 재차 유예해야 한다는 조언이 업계에서 나온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금투세를 도입하면 국내 증시의 세제상 비교 우위가 사라져 해외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유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가 2020년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공식화한 배경은 자본시장 세제 정비에 있었다. 상장 주식과 채권·파생상품 등의 비과세 범위가 넓어 조세 형평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이 때문에 대주주를 제외하면 사실상 세금을 매기지 않던 상장 주식 매매 이익에 5000만 원의 기본공제를 제공하되 과세 대상 소득으로 보겠다는 것이 당시 정부의 구상이었다.
금투세 도입으로 개인투자자의 세 부담이 늘어난다는 지적에 대해 홍남기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소액 투자자는 증권거래세 인하로 오히려 세 부담이 경감될 것”이라며 “금융투자소득세제 개편을 세수 중립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해외 주식 투자 바람과 공모주 청약 붐이 일면서 지금의 금투세 도입은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중산층의 세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득세 인적공제가 대표적이다. 만약 부양가족이 주식에서 100만 원을 초과한 이득을 얻었는데도 연말정산 시기에 공제 대상에 포함해 국세청에 제출한다면 덜 신고한 액수의 10%를 가산세로 내야 한다. 주식 일반 매매는 물론이고 공모주 청약을 통한 차익 역시 대상에 포함된다. 정부 관계자는 “금투세가 도입되면 주식에서도 양도소득이 발생하는 것이 돼 인적공제 계산에 반영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야당 등에서는 주식 양도차익의 5000만 원 초과분부터 20~25%의 세율을 매긴다는 점을 들어 ‘금투세는 중산층에 큰 영향이 없다’는 논리를 펼쳐왔다. 기재부의 2022년 추산을 봐도 금투세 납부 대상자는 15만 명으로 예상돼 전체 투자자의 1%에 불과하다는 점이 주요 논거였다.
그러나 금투세 도입으로 주식 매매 이익이 세법상 ‘소득’의 범주에 본격 편입되면서 중산층의 연말정산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세무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투세는 부자뿐 아니라 중산층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금투세가 국내 증시에서의 자금 유출을 부추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비록 과세 대상자가 1%에 불과하다고는 하지만 기존보다는 과세 대상자가 10배나 늘어난 만큼 증시에 끼치는 영향력이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금투세 납세 대상자 15만 명의 투자금이 최소 150조 원 규모라는 추산을 내놓기도 했다. 이 단체는 “금투세 시행 후 수십조 원이 투자처를 해외로 옮긴다면 한국 증시가 더욱 상승 동력을 잃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또한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분야는 다르지만 파이터치연구원은 2021년 금투세 도입 시 주식시장에서 빠진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부동산 가격이 73% 급등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주가연계증권(ELS)이나 채권 소액 투자자들도 금투세 도입으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금투세 체제에서는 차익이 250만 원을 넘는다면 20% 이상의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ELS 투자 수요가 예금 등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 또한 나온다.
조세 형평성 측면에서는 금투세를 없애고 증권거래세 위주로 운영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조세협정에 따라 국내에서 세금을 내지 않는 외국인이나 법인세를 내는 기관투자가는 금투세 적용을 받지 않는다. 특히 증권거래세는 농민들 때문에 완전 폐지가 상당히 어려운 세목이다. 현재 증권거래세에는 0.15%의 농어촌특별세가 붙어 있다. 원래 정부는 증권거래세를 폐지할 방침이었는데 농특세 문제 때문에 2025년까지 0.15%로 낮추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세제실장과 관세청장을 지낸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소득세보다는 거래세가 시장에 중립적이고 세수 측면에서도 효율적”이라며 “거래세 위주로 운영하면서 일부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하는 시스템이 시장에 충격을 덜 주면서도 세수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해석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을 고려한다면 금투세 도입을 통해 세수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 또한 있다. 특히 손익 통산과 손실 이월 공제 허용 등을 담았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손실 이월 공제를 무제한으로 늘리지 않는다면 실익이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금투세에 대해 나오는 논리 중 하나가 ‘주식 팔아서 생긴 소득에 왜 과세 안 하느냐’는 것인데 그 전에 손실을 무제한을 빼주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제 정비 차원에서 국회와 정부의 사전 준비 작업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있다.
건강보험료 영향 두고도 개인투자자 ‘촉각’
투자자 사이에서는 “금융투자소득세가 도입될 경우 건강보험료가 오르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제도에서는 건보료를 계산할 때 양도소득은 빠지기 때문에 당장 주식 매매 차익이 건보료 산정에 반영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건보 재정 문제 등으로 인해 주식 양도소득을 건보료 부과 체계에 포함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투자자 사이에서 금투세 시행 이후 건보료가 인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금투세로 주식 매매 차익이 세법상 소득에 포함되기 때문에 건보료가 추가로 부과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투자자 카페를 중심으로 건보료 ‘폭탄’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달 31일 기자들과 만나 “금투세 전문가 간담회 논의에서 시장 전문가들이 건보료도 우려했다”고 전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법을 보면 국내 주식 양도소득이 건보료에 포함될 가능성은 낮다는 진단이 나온다. 건보법에서는 보험료를 산정할 때 소득세법상 이자·배당·연금 소득은 반영하지만 양도소득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가입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월액 보험료를 계산할 때 양도소득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부 입장에서도 건보료를 높이는 것은 부담이다. 실제로 올해 건보료율은 지난해와 같은 7.09%로 묶였다. 건보료가 동결된 것은 2017년 이후 7년 만이었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이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라며 “물가와 금리 인상 등으로 어려운 국민 경제 여건을 고려해 건보료율을 동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저출생·고령화로 건보 재정이 위태롭기 때문에 금투세 도입과 함께 주식 양도차익을 보험료에 반영하는 쪽으로 제도를 개편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건보는 2026년부터 당기 수지 적자가 시작돼 2028년에는 적자 규모가 1조 5836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에는 건강보험연구원이 양도소득세에 건보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연구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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