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복잡한 컴퓨터 용어도 참관객들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3일(현지 시간) 아시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컴퓨텍스 2024’가 열리는 대만 타이베이 난강전시관 7층에는 이른 시간부터 수십 m의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언론이나 애널리스트도 포함돼 있었지만 IT에 관심이 높은 일반인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대만계 미국인으로서 AMD의 부흥을 이끌고 있는 리사 수 최고경영자(CEO)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였다. 연설 시작이 한 시간 넘게 남았지만 사람들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행사를 기다렸다.
전날 오후 늦게 행사의 포문을 연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기조연설에서 시작된 행사 열기는 이날 아침에도 이어졌다. 주최 측은 안전 문제를 염려해 수천 개 좌석을 설치하고 제한된 인원에 한해 연설 신청을 미리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현장의 열기에 결국 자리를 얻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좌석 뒤에 서서 수 CEO의 강연을 들었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린 관객들은 ‘대만의 자랑’이라며 소개된 수 CEO가 등장하자 박수갈채를 보냈고 대만과 관련된 내용이 나올 때마다 뜨겁게 호응했다.
개막 전이었지만 행사장 곳곳에서 대만 IT 산업의 열의와 자신감이 전해지기도 했다. 대만은 TSMC와 대만계 기업가들이 이끄는 회사들과의 공고한 협업을 통해 인공지능(AI) 기술이 여는 새로운 국면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컴퓨텍스는 IT 산업의 중심이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며 점차 위세가 꺾여가던 대만 IT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행사장에서 만난 한 엔비디아 직원은 “지난해에도 행사가 커졌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올해는 훨씬 더 많아진 느낌이다”며 “젠슨 황의 일거수일투족이 전 국민에게 생중계될 정도로 대만 IT 산업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고 말했다.
게임용 그래픽카드 등 컴퓨터 주변 장치를 소개하는 행사에 지나지 않던 행사는 AI 훈풍을 타고 컴퓨터 산업 전환의 중심에서 주목도 높은 행사로 변모하고 있다. 지난해 3000개 안팎 규모였던 부스는 올해 4500개가량으로 늘었다. 국내에서도 SK하이닉스가 처음으로 행사에 참가해 단독 부스를 차린다. 주최 측인 대만 대외무역발전협회의 제임스 황 회장은 이날 수차례 AI 산업에서 컴퓨텍스가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해는 젠슨 황의 참가로 관심을 높였지만 주최 측은 올해 팻 겔싱어 인텔 CEO, 크리스티아누 아몬 인텔 CEO 등 미국 토종 IT 회사들의 거물을 초청해 행사의 체급을 한 단계 높였다.
프레젠테이션 내용이나 무대에 오르는 인사의 면면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날 수 CEO의 연설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에이수스·레노버 같은 전통적 파트너사 외에도 이미지 생성 분야의 대표 AI 기업인 스테빌리티AI의 크리스천 라포르테 공동 CEO가 깜짝 무대에 올라 AMD와의 협업 현황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 참관객은 “몇 년 후에는 컴퓨텍스라는 행사명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며 “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각종 AI 기업들이 이 행사의 주요 기조연설을 맡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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