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상속세 부담이 이어진다면 기업들이 줄줄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주 일가가 회사를 팔 때 실질적인 소득이 생기면 그때 과세를 하는 자본이득세를 도입해야 합니다.”
황승연(사진) 경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상속세제개혁포럼 대표)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문제를 제쳐놓더라도 자본이득세로의 전환만 추진해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기업 경쟁력 증진 등 여러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교수는 상속세 폐지와 자본이득세 시행을 일찌감치 강조해온 학자 중 한 명이다. 자본이득세는 부모가 재산을 물려줄 때는 과세하지 않고 이후 후대가 자산을 팔아 실제 이익이 발생했을 경우 세금을 물리는 방식이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직접 자본이득세 개편 필요성을 언급하는 등 당정에서도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는 주제다.
황 교수는 “상속세로 인해 회사 경영이 단절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강조한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최대주주 할증까지 포함하면 6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그는 “현재의 상속세는 소득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금을 물리는 제도”라며 “회사를 승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부 대신 경영권이라는 권한을 물려받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삼성은 고(故) 이건희 회장이 돌아가신 뒤 12조 원의 세금을 내야 했고 넥슨도 창업주가 사망한 뒤 6조 원의 상속세를 다 내지 못해 주식으로 물납한 바 있다”고도 했다.
황 교수는 “지금 당장 상속세를 바로잡지 않으면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수십 년은 뒤쳐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스웨덴을 예로 들었다. 스웨덴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70%로 유지하다 기업 유출이 심각하다는 비판 여론이 강해지자 2005년 자본이득세로 전환했다.
그는 “아스트라(현 아스트라제네카), 이케아, 우유팩으로 유명한 테트라팩, H&M 등이 상속세 부담으로 나라를 떠났다”며 “이후 스웨덴은 결국 상속세를 없앴지만 떠난 기업들은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케아는 현재까지도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다. 아스트라는 창업주의 유족들이 주식을 다 팔아도 상속세를 낼 수 없는 지경에 몰리면서 결국 영국의 제약업체 제네카에 팔렸다.
상속 시점에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고 해도 가업이 정상적으로 유지된다면 중장기적으로 법인세를 통해서 상속세만큼의 재원을 회수하는 효과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 황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독일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7년이면 국가가 상속세를 얻는 만큼의 이익을 법인세를 통해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때문에 독일에선 가업상속공제 유지 요건 기간을 10년에서 7년으로 낮췄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상속세만 정상화된다면 한국의 기업가치도 오르고 연기금 수익률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 섬유 업체의 경우 시가총액이 7000억 원 정도 되는데, 이곳의 자산은 4조 원 가량”이라며 “이 회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로 오를 경우 세금 부담이 6배 가까이 커지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사주 입장에선 상속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주가 부양책을 삼가려는 유인이 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어 “자본이득세율을 매길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속세가 있는 국가의 평균 세율이 26%라는 점을 고려해 그거보다 조금 높은 30% 수준으로 책정하자고 주장하는 것까진 괜찮다”면서도 “상속세가 없는 나라까지 포함하면 OECD의 실제 평균 상속세율은 13% 수준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반 재산에 대한 상속세 공제액수도 늘려야 한다는 해석이다. 황 교수는 “마지막으로 상속세율이 바뀐 김대중 정부 당시 이후 부동산 등 각 재산 가치가 급격히 커졌다”며 “과거에 비해 상속세를 내는 사람이 급격히 커져 중산층도 배우자가 사별하면 이사를 가야 하는 사망 범칙금처럼 돼 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인간 문명은 축적을 통해 발전했다”며 “축적은 인간의 본성인데 이를 금지하면 발전이 없다”고도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