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농업법을 5년마다 바꾼다. 지금의 2018년 농업법은 지난해 9월 30일이 만기였다. 새 법을 만들지 못한 의회가 지난해 11월에 특별법으로 1년 연장했다. 그러나 늘린 기간 안에 새 농업법이 들어설 것으로 믿는 사람은 없다. 공화당 주도 하원 법안과 민주당 주도 상원 법안이 아직 큰 차이를 보여서다.
소득·경영 안전망 규정은 미국 농업법의 핵심이다. 가격 혹은 수입 위험을 보상하고 보험 선택을 추가 지원하는 게 안전망의 틀이다. 이 틀을 더 튼튼히 하는 것에는 상·하원이 같다. 다만 거기 따르는 수많은 정책 변수 확정이 어렵다. 가격·수입·보험 가운데 농가 선택 조건과 과정, 정책 발동 기준, 보상·지원 범위 등 변수 하나하나를 확정하고 법률에 규정한다.
새 법 만들기는 현행법 만료 2년 앞서 시작한다. 정부 제안 검토, 지역·품목·이해단체별 공청회, 의회 청문회 등 긴 과정을 거친다.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정책 변수 확정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농가는 시장과 정책 변수를 참고해 자율로 경영 의사를 결정할 수 있다. 한국 의회가 제안하는 법률안처럼 일이 일어난 뒤 특정 위원회에 결정을 맡기지 않는다. 그럴 때 농가의 자율 의사 결정 동기가 떨어지고 뒤에 큰 갈등이 따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농가 소득, 경영 안전망은 1961년 ‘농산물가격유지법’에서 출발한다. 이때 양곡을 비싼 값에 사들여 싼값에 파는 ‘이중곡가제’를 시작했다. 여건 변화로 1997년 폐지하고 농업직접지불제도를 도입해 지금까지 모양을 바꿔왔다. 거기에 2001년 농작물재해보험을 추가하고 2015년부터 수입안정보험을 시범 사업한다. 이렇게 한국은 위험관리를 중시하는 미국형과 직접 지불로 소득 지원을 중시하는 유럽형을 섞은 안전망을 세웠다. 하지만 농업인, 정치권, 심지어 정부도 만족 못 하는 수준이다.
정부는 며칠 전 ‘한국형 소득·경영 안전망’ 구축을 위한 민·관·학 협의체 운영을 발표했다. 수입안정보험, 직접 지불, 재해 대응, 선제적 농산물 수급 관리 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안전망을 짤 계획이다. 미국이 보이듯이 안전망 구축은 쉽지 않다. 정책 변수 하나하나에 수많은 이해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서 변수를 확정하지 않고 사후 결정으로 미룰 수 없다. 그것은 갈등 폭탄을 뒤로 돌리는 것이다. 시간이 들더라도 거칠 것은 거쳐야 한다.
생물이 진화해야 살아남듯이 정책도 그렇다. 농업 정책은 정부와 농업인이 역할을 나누며 가격 지원에서 위험관리 능력 키우기로 나가는 게 진화다. 정부 의무 매입으로 소득·경영 안전망을 짜는 것은 진화가 아니다. 아무쪼록 진화한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이참에 국회가 정부 논의에 함께할 수는 없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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