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에 SK스퀘어는 ‘아픈 손가락’ 중 하나로 꼽힌다. 미래 성장성이 큰 정보통신기술(ICT) 업종에 대한 전문 투자 기업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2021년 SK텔레콤에서 인적 분할해 출범했지만 투자 성과가 신통찮아서다. 기업공개(IPO)에 실패해 스웨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EQT파트너스에 결국 경영권을 넘긴 SK쉴더스가 대표적 사례다.
그나마 반도체 호황 속에 조(兆) 단위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한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SK플래닛·11번가·티맵모빌리티 등 23개 투자회사가 대부분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SK 내부에서도 “SK하이닉스를 제외한 나머지 투자 자회사를 모두 없앤다는 각오로 리밸런싱(구조조정)에 나서달라”는 지침이 내려진 상태다. 회사 출범 당시 세운 “2025년 순자산가치(NAV) 75조 원짜리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SK스퀘어와 합병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SK네트웍스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SK네트웍스는 인공지능(AI) 중심 사업형 투자회사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주력 사업(휴대폰 단말기 유통, 자동차 경정비, 렌털 사업)과 특별한 연관이 없는 사업들로 손을 뻗쳤다. 지난해 데이터 관리 및 솔루션 업체인 엔코아를 965억 원에 인수하는가 하면 올 초 대규모언어모델(LLM) 개발 업체인 업스테이지에 250억 원을 투자했다. 2020년대 들어 직영 주유소, SK핀크스 골프장 지분, SK 명동 빌딩 등을 잇달아 매각하며 확보한 현금을 신산업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다연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SK네트웍스가 2020년 이후 국내외에서 단행한 지분 및 펀드 투자가 2500억 원을 넘긴 것으로 분석된다”며 “사업형 투자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투자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8년 236.1%였던 이 회사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322.6%로 100%포인트 가까이 뛰었다. 현재 총차입금은 5조 1600억 원에 이른다.
SK그룹이 투자회사를 줄이는 쪽으로 검토하는 것도 결국 지금처럼 놔두면 방만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태원 SK 회장의 생각은 AI·반도체라는 커다란 물결이 이미 다가왔고 여기에 그룹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SK라는 지붕 아래 신사업 발굴 투자회사가 SK㈜·SK스퀘어·SK네트웍스까지 3곳이나 있다는 것 자체가 비효율의 상징”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 거론하는 것처럼 SK스퀘어와 SK네트웍스가 합쳐질 경우 자산 총액 27조 원 규모의 매머드급 투자회사가 출범한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까지 단행해 현금을 추가 확보하면 AI와 반도체 부문에 쓸 실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의 시선은 28~29일 이틀 동안 이천에서 개최되는 SK의 경영전략회의로 쏠리고 있다. 투자회사 구조조정을 비롯해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각종 자회사 매각을 통한 계열사 정리 등이 이번 회의를 통해 최종 윤곽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에는 최 회장과 최재원 SK이노베이션 수석부회장,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총수 일가뿐 아니라 SK㈜·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하이닉스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 30여 명이 전부 참석할 예정이다. 미국 출장 중인 최 회장은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한다.
SK그룹 관계자는 “AI 시대를 맞아 향후 2~3년간 그룹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 같은 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중장기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날 회의에서 구체적 리밸런싱 방안을 발표하지는 않고 각 계열사들이 이사회 등을 거쳐 최종 실행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SK는 8월 개최되는 이천포럼과 10월 CEO세미나에서 향후 이행 계획을 추가 점검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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