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여야 간 대화는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금 개혁이 늦어질수록 미래 세대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치권이 하루속히 제도 개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따르면 여야는 지금까지 연금 개혁 논의를 위한 구체적인 실무 대화에 착수하지 않았다. 국회가 개원 28일 만에 원 구성은 마쳤지만 야당이 순직 해병 특검법과 방송 3법을 강행하고 있는 데다 여야 모두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어 연금 문제는 뒷전이라는 분석이 많다. 국민연금법을 담당하는 국회 복지위는 개원 이후 전체회의를 세 차례 열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의료 개혁 문제를 다루는 데 썼다.
현재 연금 개혁을 둘러싼 여야의 입장 차이는 분명하다. 야당은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함께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여당은 구조 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복지위 소속인 안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연금 개혁은 이번 한 번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번에 구조 개혁을 함께 논의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꾸준히 논의하겠다는 확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복지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강선우 의원실 관계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양보안(소득대체율 43%, 보험료율 13%)을 제안했음에도 거부한 것은 여당과 대통령실”이라며 “여당이 책임 있는 대안을 가져와야 한다. 구조 개혁을 하겠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제안해야 논의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연금 개혁의 핵심 주체 가운데 하나인 정부는 논의 과정을 국회에 맡긴 채 뒷짐을 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아직 국회에서 이렇다 할 자료 요청이나 보고 요구가 없다”며 “논의가 시작되면 지원을 위한 준비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에서 연금 정책을 담당하는 국장 자리도 공석이다. 지난해부터 연금 개혁 전반을 이끌어왔던 이스란 전 국장이 지난 달 30일자로 사회복지정책실장으로 승진했기 때문이다. 앞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국회에서 다루는 사안이므로 충분한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며 한발 뺐다.
전문가들은 국회 일정을 고려하면 연금 개혁 논의를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연금 개혁이 5년 늦어질 경우 869조 원의 부담이 증가한다. 단순 계산으로 연평균 52조 원, 매달 약 4조 3000억 원의 부담이 가중된다. 하루 기준으로 1500억 원가량이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야 모두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지체 없이 연금 개혁을 논의하자고 하지 않았느냐”며 “모수 개혁과 구조 개혁을 한번에 논의하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21대 국회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보험료율부터 인상해 급한 불을 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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