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4%로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세를 기록했습니다 기획재정부나 통계청이 진행한 물가동향 브리핑도중 한 숨이 사라진 것도 오랜만이었는데 개운치가 않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 물가가 다시 상승세를 타지는 않을지,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더이상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불안심리를 떨치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실제로 지난해에도 7월 물가가 2.4%를 기록한 뒤 집중호우와 수해로 인해 물가는 다시 뛰기 시작해 연말까지 3%대에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사과, 배 등 과일 가격이 여전히 강세를 이어가는 것도 부담입니다. 농산물 물가는 9개월 연속 두자리 수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석유류와 외식 등 일부 품목의 물가도 불안한 모습을 보인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최근 금융위원장에 지명된 김병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물가와 관련해 “농산물 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생활물가 상승률도 2%대에 진입했다”며 “향후 특별한 추가 충격이 없다면 하반기 물가는 당초 정부 전망대로 2% 초중반대로 안정화될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김 차관의 공언대로 2.4%에 이어 더 안정추세를 이어가며 물가는 잡힐까요.
김병환 차관 “2%초중반대로 물가 안정화될 것”
우선 지난 2일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동향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84(2020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4% 올랐습니다. 지난해 7월(2.4%)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이고 6월 기준으로는 2021년(2.3%) 이후 3년 만에 최소치입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1월 2.8%에서 2∼3월 3.1%로 높아진 뒤 지난 4월(2.9%)부터 다시 2%대로 내려앉았습니다.
3.1→2.9→2.4%…농축산물 물가는 6.5%↑
품목별로는 농축수산물이 1년 전보다 6.5% 상승했습니다. 수산물(0.5%)과 축산물(-0.8%)은 안정적 흐름을 보였지만, 농산물이 13.3% 상승한 탓이 컷습니다. 이상 기후와 병충해에 따른 작황 부진으로 지난해 보다 사과가격은 63.1%, 배는 무려 139.6%가 넘게 올라 과일 물가 고공행진은 계속됐습니다. 이쯤되면 농산물 가격은 잡히지 않았구나 싶는데, 농축수산물 가격이 둔화세를 보인다는 소식도 있고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을 진화하기 위해 4일 한훈 농식품부 차관 주재로 '농식품 수급 및 생육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농축수산물 물가가 전월보다 2.2% 하락해 3월 정점 이후 석 달 연속 확연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여전히 농산물 물가가 두자릿수 상승세를 기록한다고 했다가 갑자기 확연한 안정세라니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통계청 발표는 지난해 같은 기간 즉 전년동월대비 비교였고, 농식품부는 전월 대비였던 차이가 있었습니다.
농식품부, 전월대비 수치로 농산물 물가 안정세
두 기준점을 비교하자면 농산물은 전년보다는 13.3% 상승, 전월보다는 5.3% 하락, 과일은 전년보다는 30.8% 상승했지만 전월보다는 2.9% 하락했습니다. 쉽게 말해 월별 추세적으로 농산물 물가도 안정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전년동월대비 올랐다면 물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인 것 또한 맞습니다. 더구나 제철 과일이 나온 뒤부터 전월대비 과일 가격이 안정세를 찾는다면 계절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겨울철 2월과 봄철 3월의 과일 값을 단순히 월별 추이로만 따져 안정세를 찾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농산물 가격이 안정세를 찾았다는 농식품부 말이 공허한 이유입니다.
이런 와중에 석유류는 1년 전보다 4.3% 상승해 전월(3.1%)보다 높은 오름세를 보였습니다. 2022년 12월 6.3% 증가한 이후 18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이었습니다. 지난해 국제유가가 상대적으로 낮아 기저효과 영향이라는 게 통계청 설명이었습니다. 한달 전부터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류 상승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정부가 이달 들어 세수 확보 차원에서 유류세 인하폭을 축소한 점도 물가 상승세를 키울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일부터 휘발유에 붙는 유류세를 L당 615원에서 656원으로 41원, 경유는 369원에서 407원으로 38원 올렸습니다.
한동안 오름세가 꺾였던 외식 물가도 원재료비와 인건비 상승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3.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12월(4.4%)부터 올해 5월(2.8%)까지 6개월 연속 상승폭이 줄어들다가, 다시 늘어난 겁니다. 떡볶이(5.9%), 도시락(5.3%) 김밥(5.2%) 비빔밥(4.9%) 치킨(4.9%) 칼국수(4.7%) 구내식당 식사비(4.3%) 김치찌개 백반(4.1%) 쌀국수(4%) 등이 줄줄이 상승했습니다.
가스요금 결국 인상…물가 끌어올린 외식물가 또 들썩
정부는 추세적인 물가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가 안정적인 흐름을 지속하고 있는 만큼 추가적인 충격이 없다면 올 하반기에도 2% 초중반의 물가상승률을 유지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7~8월의 경우 여름철 기후영향, 국제유가 변동성 등으로 물가 여건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고 실제 지난해 7월 이후 물가를 출렁이게 만들었던 것은 이상기후와 국제유가였습니다.
그럼에도 농산물과 석유류의 소비자 물가 기여도는 각각 0.49%포인트, 0.16%포인트였습니다. 반면 외식 등 개인 서비스 물가의 기여도는 1%포인트에 가까운 0.93%포인트였습니다. 이상 기후나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로 인한 유가 상승을 정부가 막을 수 없어서 개운치 않았던 것이 아니라 떡볶이, 도시락, 김밥 등 4%이상씩 올라버린 외식물가 탓에 찜찜한 여운이 남았던 것은 아니었나 다시 숫자를 보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그간 억눌러왔던 공공요금 인상이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다음달부터 가정집에서 쓰는 가스요금이 6.8%오르게 됩니다. MJ(메가줄)당 1.41원, 일반용은 1.3원이 각각 오릅니다. 민수용 가스요금이 오르는 건 1년 2개월 만. 가스 요금은 모든 물가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물가를 끌어올린 기여도가 높은 외식물가를 더 자극할 수 있습니다. 한숨은 돌렸는데 불안은 더 커집니다. 부디 정부 기대만큼 물가가 안정되길 바랍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