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발바닥에 무언가 물컹거려 살펴보니 밥알 몇 개가 눌려 있었다. 밥알을 떼고 부엌을 지나가는데 문득 지난해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몇 초간 멍하니 서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특별한 습관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 늦은 밤 쌀을 깨끗이 씻고, 그 물을 버리지 않고 큰 바가지에 정성껏 담아 놓으셨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쌀뜨물이었다. 어린 필자의 눈에 신기했던 건 그 허연 쌀뜨물을 아껴 화분에 물을 주거나 설거지를 할 때 쓰신 거였다. 특히 찌개 국물로도 활용하셨는데, 덕분에 어머니의 밥과 찌개는 늘 ‘밥 한 공기 추가’를 부르는 꿀맛이었다.
국민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이 무려 306ℓ다. 무심코 흘려보내는 것치고는 어마어마하다. 먹는 물뿐만 아니라 샤워나 양치, 설거지를 할 때 흘려보내는 물이 너무 많다. 가끔 외부 행사에 참석하면 먹다 남은, 결국에 가서는 버려지는 생수와 물병에 안타까워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물과 전기를 펑펑 쓰고 손도 대지 않은 음식도 통째로 버려진다. 그래서 직원들과 모임을 할 때 유일하게 부탁하는 것이 있다면 안주나 식사가 넘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덜 채움의 가치에 대해 서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가 환경오염의 근원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는 전날에 사용한 e메일, 인쇄물, PC 사용량 등 일상 속 탄소 소비량을 개인별로 측정해 제공한다. 실제로 사내 시스템에서 이름을 치면 탄소 사용량과 등급이 나온다. e메일 1MB는 14.9g, 프린트 1장은 3g의 탄소가 발생된다는 식이다. 신한 그린 인덱스라고 부르는데, 그룹에서 먼저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에너지 절약을 강조하기에 앞서 우리부터 먼저 실천하자는 작지만 중요한 셀프 리더십으로, 직원들의 참여도와 반응이 뜨겁다.
직원들이 ESG 중 환경과 관련해서 카드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는지 자주 묻는다. 나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거창하고 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일회용품을 멀리하고, 필요 없는 메일은 바로 삭제하고, 휴지 한 칸을 아끼는 작은 실천이면 된다. 중요한 것은 검약(儉約)에 대한 분명한 자기의식과 실천이다. 주변에 같이 해보자고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본다면 금상첨화다.
예전에 어머니는 주무시기 전 부엌에 홀로 서서 쌀뜨물을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벅벅 쌀을 씻던 소리와 어머니의 허연 쌀뜨물이 너무 그립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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