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로 무너져 내린 공장 지붕을 바라본 순간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하지만 빠른 대응을 통한 고객 신뢰 확보는 물론 태양광 설비까지 더해지며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바꿨습니다”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에 있는 한솔제지(213500) 장항공장 내부는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높은 온도와 가득찬 습기로 마치 습식 사우나에 온 느낌이었다. 18만5124㎡(5만6000평)의 대지 면적에 걸맞게 눈 앞에는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크기인 길이 140m, 폭과 높이가 각각 6m, 9m인 대형 초지기가 폭 5m의 종이 펄프를 연신 뽑아내고 있었다. 초지기는 실로 옷감을 짜는 베틀과 같이 종이 원료에서 초지라 불리는 종이의 1차 형태를 만들어내는 기계로 제지 설비의 핵심 설비다. 높은 온도와 습도는 물과 함께 섞인 종이 원료가 펄프 형태로 시속 80㎞ 속도로 대형 롤러에 맞물려 돌아가면서 압착과 회전을 통한 탈수와 스팀을 이용한 건조 과정을 거치면서 나오는 부산물이다.
첫 번째 초지기를 지나자 한솔제지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초지 2호기가 나타났다. 2022년 12월 말 발생한 폭설로 지붕이 붕괴되면서 5개월 가까이 생산이 중단 됐기 때문이다. 배기문 기술환경팀 팀장은 “3일 연속 30㎝ 넘는 눈이 공장 지붕에 쌓이면서 초지 2호기 위 지붕 80m 구간이 무너져 내렸다”며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고 초지기도 직접적인 타격은 없었지만 그 위에 있던 대형 크레인이 손상되면서 생산중단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60여일 간의 생산 중단은 한솔제지 실적에 직격탄을 날렸다. 2023년 5월 26일 다시 생산을 재개할 때까지 10만 톤 이상의 생산 차질을 초래했고, 금액으로도 500억 원 이상의 피해를 안겼다. 실제 복구 된 초지 2호기 위의 지붕 85m는 기존에 있던 지붕과 확연히 다른 색을 띄고 있어 당시 붕괴 규모가 상당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는 한솔제지에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배 팀장은 “처음에 무너진 공장 지붕을 보고 영업손실 보다 당장 공급 제한으로 수십년간 지켜온 고객들의 신뢰가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들었다”면서도 “공장 직원들은 물론 영업, 고객만족(CS) 부서까지 해결 책 찾기에 나섰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우선 초지기 2호기에서만 생산 가능하던 연예인 화보용 고급 인쇄용지와 잡지 및 브로셔용 고평량(두꺼운) 코트지가 다른 초지기에서 생산이 가능하지를 점검했다. 다행히 핵심 품질 확보 및 공정 운영이 가능하다는 진단이 나왔고, 빠르게 옆 라인에서 생산을 재개할 수 있었다. 배 팀장은 “24시간 365일 돌던 초지기가 멈추면서 일부 공급이 제한적이었지만 신속한 조치로 고객의 신뢰를 지켜낼 수 있었다”며 “다른 생산라인에서도 기존과 같은 고품질의 다른 제품들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실적도 빠르게 회복했다. 한솔제지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34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36% 증가했다.
여기에 한솔제지는 지붕 붕괴를 또 다른 기회로 삼았다. 지붕을 복구하면서 올해 하반기부터 공장 지붕 전체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최근 급격히 상승하는 전력 비용에 대응해 대체 에너지 사용을 통한 전력비 감소는 물론 온실가스 저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으로 한솔제지는 기대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