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위축돼 있는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설립을 적극 장려하고 전문 자문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업계에서 나왔다. 대·중견기업 소속 CVC는 일반 금융기관과 다르게 추후 M&A를 목적으로 전략적 투자(SI)를 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CVC를 육성해 M&A 시장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 스타트업이 인수 또는 합병되는 과정에서 법률·회계 관련 문제를 많이 겪는 만큼 이를 사전에 해결하기 위한 자문 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국회 스타트업 지원 모임인 유니콘팜이 주최하고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관한 ‘기업 혁신을 위한 스타트업 M&A 활성화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국내 스타트업 M&A 시장 활성화를 위한 각종 주문이 쏟아졌다. 벤처캐피털(VC) 등 스타트업 투자 기관이 주로 M&A를 통해 투자금 회수(엑시트·exit)를 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기업공개(IPO) 비율이 높다. 미국벤처캐피털협회(NVCA)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스타트업 회수 중 M&A가 차지한 비율은 미국은 94.6%에 달했지만 한국은 58.1%에 그쳤다.
IPO를 통한 회수는 글로벌 고금리 등으로 시장이 얼어붙을 때 더욱 어려워지는 특성을 갖는다. 스타트업은 보통 여러 단계에 걸쳐 초기 투자·육성 기관인 액셀러레이터(AC) 및 VC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는데 각 단계별로 기업가치를 산정해 지분 가격을 매긴다. 문제는 스타트업 투자 유치의 최종 단계인 IPO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낮아지면 그 전 높은 가격으로 지분을 산 투자자들이 IPO에 반대하게 된다는 점이다. 여영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투자 혹한기에 기업가치가 낮아지면 IPO 추진이 어려워져 투자금 회수 측면에서 M&A 중요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국내 M&A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는 CVC 육성이 지목됐다. 재무적 투자(FI)를 주로 하는 전문 금융기관과 달리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그룹 내에 소속된 CVC는 모그룹과의 사업 시너지를 감안한 전략적 투자를 하는 만큼 추후 M&A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이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CVC의 주 목적 중 하나는 M&A"라며 “해외에서는 CVC 투자의 10~15% 가량이 모기업 M&A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여 부연구위원은 “국내 기업들의 CVC 설립과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관련 세액 공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첨언했다.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법률·회계 자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런드리고’ 운영사 의식주컴퍼니의 정준모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의식주컴퍼니는 다른 소규모 스타트업을 인수하면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며 “인수하려는 기업의 자산과 부채, 특허 등 회계를 파악하는 일과 법적 리스크를 판단하는 일과 관련해 전문적 자문을 받을 수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CFO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타트업 간 인수도 M&A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며 “변호사와 회계사 등으로 이뤄진 전문 자문 기구가 있다면 스타트업 간 M&A도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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