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두산로보틱스에 합병 관련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을 뼈대로 한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발표 이후 불공정한 합병 비율로 소액주주의 반발이 거세지자 사실상 금융 당국이 제동을 걸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24일 금감원은 두산로보틱스가 15일 제출한 합병 관련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신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증권신고서가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거나, 중요 사항과 관련해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저해하거나 중대한 오해를 일으키는 등의 문제가 있을 경우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금감원은 정정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금감원이 정정신고서를 요청하면서 두산그룹이 제출한 증권신고서는 효력이 정지됐다. 다만 두산 측은 통상적인 정정 요구라는 입장이다.
금감원이 두산로보틱스에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두산그룹이 증권신고서에 합병과 관련한 핵심적인 위험 요인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정신고서를 요구한 배경에 대해 “이번 구조 개편 목적이나 이로 인한 효과, 재무 안정성에 대한 영향 등을 투자자들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공시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두산그룹은 앞서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완전자회사로 이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시가를 기준으로 합병 비율을 정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연 매출이 10조 원에 육박하는 두산밥캣과 연 매출 530억 원에 적자 상태인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비율이 1대0.63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두산밥캣은 우량 회사에 현금 흐름이 좋지만 저평가돼 있고 두산로보틱스는 사실상 테마주로 주가 수준이 높게 형성돼 있는데 이를 토대로 합병 비율을 정하는 것이 맞느냐는 반발이다. 다만 자본시장법상 상장사 합병 비율은 시가 기준으로 합병 비율을 정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합병 결과 대주주인 ㈜두산의 지배력만 확대되는 만큼 밸류업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구조 개편이 이대로 마무리되면 지주사인 ㈜두산의 두산밥캣에 대한 실질적 지분율이 약 14%에서 42%로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앞서 기업거버넌스포럼은 두산그룹이 낸 증권신고서와 관련해 핵심 위험 요소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주주가 분할 합병 및 주식 교환으로 받게 될 두산로보틱스 주식이 주가순자산가치(PBR) 12배 등으로 초고평가 상태인 점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국인·기관투자가 대상 투자설명회에서 구체적인 합병 이유나 시너지 효과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기업거버넌스포럼 관계자는 “협동로봇 시장의 성장성이 높지 않다고 고지한 만큼 두산로보틱스의 현재 주가 수준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으나 부실 기재했다”고 말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22일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두산밥캣 합병과 관련해 “시장의 우려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제도적으로 고칠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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