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최근 전 금융권에 내렸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정리 지침’에 금융위원회가 제동을 걸었다. 금융위는 금융회사들과 추가 협의를 거쳐 보완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불과 사흘 전 금감원이 “부실 사업장을 6개월 내 처분하라”며 ‘최후통첩’을 날렸지만 시한을 두고 압박하면 구조조정이 더 꼬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금융위가 다급히 수습에 나선 것이다. 특히 이번 부동산 PF 정리 지침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주관 부처인 금융위와 금감원 간 협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너무 속도를 낸 나머지 금융위를 패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5일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부동산 PF 사업장 정리 지침과 관련해 “당국 내에서 업계의 의견을 듣고 추가로 논의를 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면서 “(지침을) 다시 한 번 살펴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금감원은 △부실 부동산 PF 사업장 6개월 내 정리 △3개월 이상 연체된 사업장의 경·공매 처분 △경·공매 주기 1개월로 단축 등을 핵심으로 한 부동산 PF 사업장 정리 지침을 이달 22일 금융권에 배포했다. 다음 달 9일까지 계획안을 제출하라는 ‘데드라인’까지 못 박아 속도전을 주문했지만 불과 사흘 만에 급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금융 당국이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부실 PF 사업장 정리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면서 경·공매 절차가 되레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는 물론 당국 내에서까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지침을 마련한 금감원과 달리 금융위는 경·공매 주기가 한 달로 좁혀지면 매수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경·공매가 빈번하게 이뤄지면 가격이 매달 떨어질 게 뻔하니 입찰가가 바닥을 치기 직전까지 경·공매 시장에서 잠재 매수자들이 발을 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방 PF 사업장의 경우 경·공매를 통해 가격을 낮춰도 치솟은 공사비가 조정되지 않으면 사실상 사업장을 조기에 정상화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반면 금감원은 금융사가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책정해 ‘파는 시늉’만 하고 있는 만큼 압박 수위를 과감하게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금융위와 금감원 모두 경·공매를 통해 부실 사업장을 서둘러 정리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면서도 “다만 금융위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금감원은 경·공매 매물을 늘리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양측의 입장이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권에 지침이 통보됐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지침 마련 과정에서 어떤 사업장이 경·공매 대상에 오를지 등은 금융위와 공유했지만 경·공매 가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입찰 주기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이 부동산 PF 부실 사업장 정리에 속도를 내려다 과속을 해버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논의에 관여한 한 인사는 “지침이 금융사에 배포된 뒤에서야 금융위가 세부 내용을 확인한 것으로 안다”면서 “협의가 충분히 안 된 상황에서 지침이 배포됐다는 게 금융위의 시각”이라고 전했다.
금융 당국의 설익은 지침이 배포되면서 업계의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공매가 얼마나 자주 이뤄지는지에 따라 매물 가격 하락 폭이 결정된다”면서 “지침 문구에 따라 한해 실적이 좌우될 판인데 당국이 사안을 너무 가볍게 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 신중섭 기자 jseo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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