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5일 상속세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밝힌 핵심은 중산층 부담 완화와 다자녀 가구 우대다. 아이가 많으면 세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저출생 대책 측면도 있다. 기획재정부가 자녀공제를 5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대폭 올린 배경이다.
기재부 내에서는 자녀공제 대신 배우자공제나 일괄공제를 올리는 방안도 거론됐다. 하지만 자녀공제를 대폭 올림으로써 최소 자녀가 한 명이라도 있는 가구는 상속세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현재 상속세 공제는 일괄공제(5억 원), 기초공제(2억 원)와 자녀공제(5000만 원) 같은 인적공제를 더한 것 중 높은 값을 적용한다. 여기에 5억~30억 원인 배우자공제를 추가로 덧붙이는 식이다. 세법개정으로 1인당 자녀공제가 일괄공제와 금액이 같아지면 아이가 한 명만 있어도 과세표준이 낮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실거래가 25억 원인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를 예로 들면 배우자와 두 명의 아이가 아파트를 상속받을 경우 현재 부담은 4억 4000만 원이다. 상속재산 가액(25억 원)에 일괄공제 5억 원, 배우자공제 5억 원을 더해 과표를 15억 원으로 한 뒤 최고 40%의 세율을 적용한 액수다.
이번 개정안을 적용하면 상속세액이 1억 7000만 원으로 급감한다. 공제액만 따져도 기존 10억 원에서 17억 원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기초공제 2억 원에 자녀공제 10억 원, 여기에 배우자공제 5억 원을 더한 것이다. 상속세 최저세율 구간이 1억 원 이하에서 2억 원 이하로 높아진 것도 한몫한다.
만약 이 가구의 자녀가 3명이라면 상속세액은 4000만 원으로 크게 줄어든다. 자녀공제액이 5억 원 더 늘어 총 공제액이 22억 원으로 급증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가격이 25억 원이 아니라 20억 원이라면 공제액(22억 원)이 상속재산 가액(20억 원)을 웃돌아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평균적인 수준의 서울 아파트에 사는 4인 가구는 17억 원을 공제받아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기준 서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12억 9967만 원이었다. 거래가 약 16억 원의 서울 래미안공덕5차(전용면적 84.9㎡)의 경우 배우자와 아이 2명이 내는 상속세가 약 1억 2000만 원에서 0원으로 내려간다.
전문가들은 상속세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을 환영하면서도 유산취득세 전환이 포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산취득세를 도입할 경우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율 인하나 과표 조정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얘기도 있다. 나철호 재정회계법인 대표는 “상속세 개편에서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것은 소득세 최고세율과 상속세 최고세율의 일치, 최대주주 할증 평가 폐지, 유산취득세 전환, 그리고 자본이득세로의 이행”이라며 “정부의 상속세 개편 의지가 약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상속·증여를 통한 세금 회피를 막는 방안도 보완한다. 정부는 양도소득세 이월 과세를 적용받는 자산에 양도일 전 1년 안에 증여받은 주식을 포함하기로 했다. 세법에서는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해 토지·건물이나 아파트 당첨권을 배우자나 부모, 자녀에게서 증여받아 10년 안에 양도하면 증여자의 취득가액을 기준으로 양도차익을 계산한다.
기재부는 또 납세 의무를 피하기 위해 피상속인이 보험에 가입하고 상속인이 보험금을 받는 경우 사망보험금을 상속재산으로 간주해 세금을 매기기로 했다. 부동산 연금화 촉진세제도 첫발을 뗀다. 만약 소득 하위 70%인 만 65세 이상 노인이 주택·토지·건물을 팔고 이를 연금 계좌에 납입하면 이 부동산의 양도소득세액에서 연금 계좌 납입액의 10%를 세액공제해준다. 공제 한도는 1억 원이다. 다만 양도 부동산을 10년 이상 보유해야 하고 양도 당시 1주택 혹은 무주택자여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저출생 극복을 위한 지원책도 있다. 올해 1월 혼인신고분부터 2026년까지 한시적으로 결혼에 대한 특별세액공제를 신설한다. 혼인신고 부부에게 1인당 50만 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나이와 초·재혼 여부에 상관없이 생애 1회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친환경차에 적용되는 개별소비세 감면은 2년 연장하되 하이브리드차에 대해서는 감면 한도를 100만 원에서 70만 원으로 내렸다. 2억 원의 매입 한도에서 14%의 분리과세를 적용하는 개인 투자용 국채 이자소득 세제 혜택 적용 기한도 2027년 말까지로 연장한다.
미술품이나 음악저작권 같은 자산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조각투자 상품에는 배당소득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조각투자 상품이 펀드와 성격이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기재부는 현행 150달러(미국은 200달러) 한도에서 관세와 부가가치세를 면세하는 소액 수입 물품 면세 제도를 당장 조정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당장은 면세 한도를 축소하거나 폐지할 계획이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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