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아동을 위한 ‘명품 붐’이 불고 있다고 24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저출산으로 가족 규모가 작아진 가운데 ‘하나뿐’인 자녀를 위해 부모는 물론 조부모까지 지갑을 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FT는 최근 4살 딸을 위해 78만 원 상당의 티파니 실버 목걸이를, 18개월 된 작은 딸을 위해 38만 원 짜리 골든구스 신발을 구입한 38세 아이린 김의 사례를 소개했다. 김 씨는 FT에 “결혼식이나 음악회 등에 갔을 때 아이들이 초라해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며 “아이들이 이 옷과 신발을 신고 편안하게 뛰어다닐 수 있다면 가격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이들을 위해 몽클레어 재킷과 셔츠, 버버리 드레스와 바지, 펜디 가운과 신발 등도 사들인 바 있다고 했다.
FT는 한국에 김 씨 같은 부모가 드문 사례는 아니라고 봤다. FT는 “세계은행에 따르면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이 나라에서는 소규모 가족을 위해 명품을 과시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고 짚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의 뷰티 및 패션 컨설턴트인 리사 홍은 FT에 “한국의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아동용 럭셔리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한국인은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며 남들이 하는 건 다 해야 한다”며 “자녀가 한 명 뿐인 가정이 많고 자녀를 위해 최고급 제품을 선택하기에 첫 명품 소비 연령도 낮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에트로코리아 대표이자 디올코리아의 전 대표를 지닌 이종규 대표 역시 “한국 사회는 경쟁이 치열하고 사람들은 남보다 돋보이기를 원하기에 명품은 좋은 도구가 된다”며 “몽클레어의 겨울 재킷은 10대들에게는 교복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실제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의 명품 아동복 시장은 1인당 지출액 기준으로 5년간 연평균 5%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며 세계 3대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백화점들 역시 지난해 한국의 저성장·고물가에도 불구하고 아동 명품 매출은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아동 럭셔리 브랜드 매출이 지난해 27%, 15%씩 급증했다고 보고했으며, 롯데백화점 역시 고급 유모차와 유아용 명품 의자 등 프리미엄 아동용품의 매출이 25% 성장했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백화점들은 아동 명품 매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FT는 고가의 선물을 받고 자랐지만 높은 집값에 좌절감을 느끼는 한국의 20대도 이 같은 명품 붐에 동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케이팝 스타들이 명품 앰버서더로 나서고 인플루언서들이 명품 쇼핑을 자랑하는 영상을 올리는 것도 이런 소비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리사 홍은 “케이팝 아이돌이 등장하는 명품 광고가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각인되면서 명품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모습이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모습으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FT는 “부모와 조부모가 비싼 패션으로 자녀를 망치고 있다”고 썼다. 또 6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을 인용해 “한국의 명품 선호로 인해 의류 가격의 탄력성이 떨어지고 있으며, 금리를 통한 인플레이션 억제가 더 어려워졌다”고도 해설했다. 또 서울 잠실에 살고 있으며 조부모님이 고가의 명품을 물려주며 키운 17세 딸이 명품을 좋아하는 것이 걱정스럽다는 직장인 엄모 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엄 씨는 최근 딸의 생일에 아식스와 마크제이콥스가 협업한 80만 원 짜리 운동화를 사줘야 했다며 “이런 소비에 익숙해진 상황인데 나중에 직업을 가진다 해도 이런 고가 소비를 감당할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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