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 피닉스는 한여름 바깥 온도가 화씨 120도(섭씨 48.8도)를 넘어설 정도로 뜨거운 도시다. 열사병 환자가 속출해 공공장소의 ‘물 인심’이 넉넉하다. 실리콘밸리에 이어 ‘반도체의 메카’로 자리잡고 있는 ‘실리콘데저트’ 애리조나가 인재 용광로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름의 애리조나는 덥지만 나머지 9개월의 날씨는 완벽하죠. 더구나 피닉스는 미국 최고의 대학 도시 중 하나입니다.”
지난달 30일 만난 카일 스콰이어 애리조나주립대(ASU) 공대 학장의 말이다. 피닉스는 광역권 면적이 3만 7810㎢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3배를 넘어서는 대도시다. 각각 피닉스 북쪽과 남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TSMC와 인텔을 이어주는 것이 ASU다. ASU는 기업 특화 커리큘럼 개발 등 적극적인 산학협력을 바탕으로 ‘교육 소비자’인 학생의 취업률을 끌어올렸다. 7년 연속 US뉴스 선정 ‘가장 혁신적인 대학’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피닉스 광역권 ASU 캠퍼스는 크게 네 곳으로 나뉜다. 본관이 위치한 템피 캠퍼스와 피닉스 다운타운 캠퍼스는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스콰이어 학장은 “15년 전부터 피닉스 다운타운에 투자를 시작해 현재는 건물 5개 중 하나꼴로 ASU 로고가 붙어 있다”고 소개했다.
ASU가 덩치를 키우며 도시의 경관까지 바뀌고 있다. 대학이 낙후된 지역을 변화시키는 첨병이 된 셈이다. ASU 템피 본관 인근에는 4~5성급 호텔 4곳이 신설됐거나 곧 들어설 예정이다. ASU와 반도체 산업체를 방문하는 기업인들이 주된 소비자다. 내년에는 글로벌 최대 반도체 장비 전시회인 ‘세미콘 웨스트 2025’가 열릴 예정이기도 하다.
캠퍼스와 주요 기업들은 인근에 자리잡고 있어 언제든 긴밀한 협력이 가능하다. 인텔 챈들러·오코틸로 팹은 ASU 본관에서 15~20분 거리에 있고 폴리테크닉 캠퍼스와도 지근거리다. TSMC 팹은 ASU 템피 본관과 차로 1시간 거리지만 ASU 웨스트밸리 캠퍼스와 가깝다. 이곳에서는 TSMC 특화 프로그램이 운영될 예정이다.
반도체 생태계 지원 역시 남다르다. ASU 캠퍼스에 자리 잡은 ‘나노팹’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파운드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곳에는 6나노 초미세 공정 반도체 제조가 가능한 E빔 등 최첨단 설비가 갖춰져 있다. 나노팹은 연구와 실습에 사용되는 것은 물론 일반 기업에도 빌려준다. ASU 관계자는 “스타트업은 설계한 칩을 이곳에서 실증한 후 대형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에 주문하거나 투자를 유치한다”며 “대형 파운드리조차 생산라인이 풀가동될 때는 급한 테스트를 위해 빌리곤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산학협력으로 ASU가 벌어들이는 연간 수입은 6억 달러에 달한다. 학비를 올리는 대신 기업에 얻은 수익으로 대학이 성장하고 대학은 학생 교육에 투자해 산학협력을 고도화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한 셈이다.
애리조나주 정부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애리조나에 집행된 반도체 투자는 40여 건, 총액은 1020억 달러를 넘어선다. 이 가운데 TSMC와 인텔 두 회사의 투자액만 공식적으로 950억 달러다. 두 회사 팹에서 필요한 추가 인력도 각각 6000명, 3000명에 달한다. 이 지역 반도체 업계로 범위를 넓히면 1만 5700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 지난해 1분기 피닉스 광역권의 반도체 관련 일자리가 14만 748개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지난해 가을학기 ASU 공대 재학생은 3만 1752명으로 연간 7000명에 달하는 공학 학위자를 배출할 수 있다. 학·석·박사를 포함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간 졸업생이 3000명 수준이라는 점과 비교하면 압도적이다. 주 정부 차원에서도 인재 육성에 적극적이다. 애리조나주와 인텔은 7월 중순 수련생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커뮤니티칼리지를 중심으로 한 산학협력으로 2년제 대학 졸업생을 엔지니어로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재직 중 ASU 등 4년제 대학에서 학위를 딸 수 있는 교육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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