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이 8일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췄습니다. 5월에는 올해 2.6%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이번에 발표한 전망에서는 2.5%로 0.1%포인트 하향 조정했습니다.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내수 부진의 영향이 크다고 판단한 결과입니다.
고금리는 민간소비·설비투자·건설투자 등 주요 내수 부문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소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KDI는 올해 민간소비를 5월 전망(1.8%)보다 낮은 1.5%로 수정했습니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소매판매액지수는 3월(-3.4%) 이후 꾸준히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같은 날 나온 2분기 국내 제조업 제품 공급도 2.2% 감소해 지난해 3분기(-2.9%) 이후 4개 분기 연속 2%대 하락률을 기록했습니다. 내수 둔화에 따른 소비재·중간재 수요 감소가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전문가들은 고금리 구조 속에서 민간 소비가 억제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합니다. 금리가 높아지면 가계부채에 붙는 이자가 비싸지니 그만큼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설비투자도 부진한 상황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1.5%), 6월(-2.7%) 모두 설비투자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감소했습니다. 통상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 기업들이 설비 투자를 늘리는 경향이 있지만 금리가 높은 탓에 수출 증가세가 설비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기업들은 통상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설비를 증설할 때 대출을 받습니다. 설비투자를 늘리면 그만큼 이자 비용이 발생한다는 의미입니다. 수출이 늘어 돈을 번다 해도 금리가 높으면 쉽사리 설비 투자에 나서지 못하는 셈입니다.
내수의 또 다른 축인 건설 시장도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KDI는 건설투자의 경우 올해(-0.4%)를 넘어 내년(-1.0%)까지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지난해부터 수주 부진이 계속 누적됐기 때문입니다. 고금리로 인해 2023년 내내 부동산 가격이 저조하자 신규 공급 물량도 덩달아 떨어진 결과입니다. 일반적으로 건설업에서 수주는 1년~1년 6개월 정도의 시차를 두고 실제 공사 실적에 반영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동안 건설 부문에서 경기 반등 요인을 찾기는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KDI는 올해 건설투자 감소 폭을 기존 -1.4%에서 1.0%포인트 상향 조정했습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건설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당초 예상보다 제한적이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목은 한국은행이 언제 얼마나 금리를 인하할지에 쏠리고 있습니다. KDI는 경제전망 수정을 발표하며 이달 말에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라도 기준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한은의 머릿속은 복잡합니다. 내수만 보면 금리 인하가 시급해 보이지만 한국 경제의 또 다른 뇌관인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분기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91.9% 수준입니다. 부동산 가격은 서울 핵심 지역 아파트를 중심으로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섣불리 금리를 내렸다가 가계대출과 부동산 가격을 모두 들쑤실 수 있는 상황입니다.
전문가들도 신중한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금리를 낮춘 뒤 내수가 진작되려면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는 데 비해 대출액 증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은 즉각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시행된 뒤 통화정책을 완화하는 것이 낫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출 규제가 시행되고 나면 금리를 낮춰도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일은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나온 지 아직 일주일도 안 됐다는 점에도 주목했습니다. 8일 공개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시장에 충분한 효과를 줄 때까지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조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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