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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샌드박스 역이 어디예요?"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 일어나자마자 AI가 내 맞춤형으로 소분해준 건강기능식품을 섭취한다. 출근길에 어제 폭우가 쏟아졌는지 포트홀을 찾는 드론이 떠 있다. 점심시간, 공유주방에서 배달을 시켰는데 배달로봇이 내 도시락을 담아왔다. 근무중에 컨디션이 안 좋아 보였던 댕댕이를 위해 비대면 진료를 신청했다. 밤늦게 나도 미열이 있어 약국 앞 스마트 화상투약기에서 해열제를 사먹었다.

규제 샌드박스가 바꾼 또는 바꿀 우리의 일상, 미래상 중 일부다. 얼핏 생각해보면 왜 지금까지도 안 됐을까 의문이 드는 이러한 서비스들이 이제서야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실험에 들어갔거나 가능해진 것이다

모래 놀이터를 뜻하는 샌드박스는 기업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규제를 유예해주는 제도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쟁력이 저하되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2010년 “핀테크를 키워보자”며 시작했다. 가정집 뒤뜰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모래를 깔아 놓은 상자처럼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 모델을 기존 법 제도의 틀에 구속받지 않고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는 임상시험 공간을 기업에 주자는 취지다. 세계 최초로 샌드박스를 도입한 영국은 현재 전 세계 최고 수준의 규제 개혁 국가로 통하고 있다.

이후 일본과 한국 등이 2018년, 2019년 각각 샌드박스를 잇달아 도입하면서 금융뿐 아니라 산업에까지 샌드박스 개념이 확장됐다. 한국은 2020년 세계 최초로 대한상의 주도의 민간 샌드박스도 만들었다. ‘정해진 것만 할 수 있다’는 포지티브 법체계를 가진 한국이다 보니 다양한 혁신 실험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지난 5년간 1260여 건이 승인됐다.



지구촌에도 입소문이 나고 있다. 대한상의에도 “한국의 민간에서 샌드박스로 정보통신기술(ICT) 실험을 해보니 어떻습니까”라며 중남미 국가 ICT 부처들의 e메일이 쏟아지기도 했다. 2년 전만 해도 50여 개국에서 샌드박스를 도입했고 지금은 구석구석 나라까지 도입이 늘고 있다.

한국형 샌드박스에 대한 아쉬움도 없지 않다. 첫 번째, 비대면 진료, 공유 차량 등 ‘넘사벽’ 규제다. 해외에서는 이미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기득권 갈등으로 성역으로 남아 있다. 어느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은 결국 일본으로 떠나기도 했다.

두 번째, 테스트 2+2년을 마친 후 법령 정비가 더딘 점도 아쉽다. 실증을 무사히 거쳤다면 법령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 또 하나의 루프홀을 만들지 않도록 국회에서 혁신 법안들을 신속히 입법해야 이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모든 스타트업들이 겪는 이른바 ‘데스밸리’를 넘어서도록 입법 및 규제기관의 발 빠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현재 전체 사례 중 법제화된 사례는 308건에 불과하다.

얼마 전 한 드라마에서 부푼 꿈을 안은 청년 수지가 스타트업으로 기회의 문을 열기 위해 찾아왔다. 수지가 물었다. “샌드박스 입구역이 어디예요?” 드라마처럼 샌드박스가 첨단산업의 묘목이 되고 기회의 문을 활짝 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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