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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 9%가 1000원 밑돌아…'PBR 1배 미만'도 올 139개 급증

[투자자 보호 말뿐인 K증시]

◆ 밸류업 추진에도 동전주 급증

높은 변동성에 시세조종 등 악용

관리종목 지정 동전주도 증가세

투자금 묶이고 韓증시 불신 심화

글로벌 요건 맞춘 규제 마련 시급





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 재건 수혜주로 거론되면서 주가가 5500원까지 올랐던 삼부토건은 불과 1년 만에 동전주(주가 1000원 미만)로 전락했다. 삼일회계법인이 반기 보고서에 ‘의견 거절’을 내면서 주식 매매가 정지됐는데 19일 거래가 풀리자마자 하한가로 직행한 탓이다.

정치권에서 연일 주가조작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등 계속기업으로서 불확실성이 목까지 찬 상태지만 롤러코스터 속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개미투자자의 입질은 여전히 극성이다. 실제 21일 삼부토건 주가는 767원으로 전일보다 12.63% 올랐다. 한마디로 공인된 투기장인 셈이다.
증시 부진, 상장 요건 완화 등이 맞물리면서 한국 증시에는 삼부토건 같은 동전주가 넘쳐 나고 있다. 이날 종가 기준 1000원 미만에서 거래되는 상장 종목은 232개로 전체 상장사(2713개)의 8.5%(코스닥은 9.1%)에 이른다.

2021년 말만 해도 92개에 불과했지만 상장폐지 요건 완화가 단행된 2022년(179개)을 기점으로 크게 늘었다. 밸류업 추진 원년인 올해도 동전주 리스트에는 53개가 새로 올랐다.

기업 펀더멘털을 고려하지 않고 동전주가 됐다는 자체만으로 문제라고 볼 순 없지만 기본적으로 주가가 매우 낮은 수준까지 추락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윤선중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동전주를 방치하면 증시가 도박판이 돼 버린다”며 “가뜩이나 해외 증시로 자금이 빠지는 판에 좀비기업에 투자금이 묶이는 부작용마저 겹쳐 우리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도 추락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짚었다.

실제 동전주는 단순히 저가로 거래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리종목 지정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체 동전주 가운데 29.8%가 상장폐지 기준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은 관리종목이나 주의해야 할 투자주의환기종목으로 지정됐다. 이는 2020년 31개에서 점차 줄어들다가 지난달 말 45개까지 다시 늘고 있다. 코스닥 시장에서 관리종목 또는 투자주의환기종목으로 지정된 주식 절반(46.9%)이 동전주다.



문제는 실질적인 규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이다. 과거 주가가 액면가의 20% 미만인 상태가 30일 동안 계속되면 ‘주가 미달’을 이유로 상장폐지하는 요건이 있었지만 2022년 10월 제도 개선 과정에서 ‘시가총액 미달’로 기준을 통합하면서 삭제됐다. 동전주들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액면분할로 액면가를 낮추거나 감자를 통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높이면서 ‘주가 미달’이 유명무실한 규정이 됐기 때문이다. 다만 제도 개선 이후로도 시가총액 미달을 이유로 상장폐지된 사례는 한 차례도 없다.

미국은 유연한 상장 유지 조건으로 동전주 수가 급증했다는 지적이 제기된 지 반년 만에 상장폐지에 걸리는 기간을 단축하기로 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한국은 거래 정지 이후 상장폐지가 결정되지만 미국은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거래가 가능하다”며 “미국이 동전주에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동전주를 포함한 좀비 상장사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상장은 쉽고 퇴출은 어려운 구조 때문에 상장 명맥만 유지하면서 시세조종 등에 악용되는 좀비기업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은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내시장에서도 동전주 거래가 증가하고 이 중 관리종목 등으로 지정되는 종목이 확대되고 있다”며 “국내시장의 상장폐지 요건이 글로벌 규제 요건에 부합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동전주나 좀비기업을 방치한 결과는 한국 증시 저평가로 직결되고 있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국내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인 종목 수는 1218개로 지난해 말(1079개)보다 12.9%(139개) 증가했다. 특히 코스닥은 20.8%(115개)나 늘어났다.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 증시의 자원 배분이 비효율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좀비기업 퇴출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국도 인지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나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올 초부터 신속한 상장폐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강조해왔다.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당국 대처가 늦어질수록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더 커진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규 상장 요건이 점차 완화되는 추세라면 상장폐지도 더욱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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