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5일 “은행이 (대출) 물량 등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대신 금액(금리)을 올리는 건 잘못된 것”이라며 “특히 수도권 집값과 관련해서는 개입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들에 대출 관리를 요구했더니 손쉬운 이자 장사에만 매달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당국 방침이 헛갈린다는 주장이 쏟아진다. 지금까지 금융당국은 총량 규제는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으면서 시중은행 담당자들을 호출해 가계대출 증가세가 가파르다고 문제를 삼아왔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20여 회가 넘는 대출금리 인상에도 한동안 당국은 손을 놓고 있었다. 특히 2단계 스트레스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시행일을 7월 초에서 다음 달 초로 돌연 연기한 것도 당국이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한다는 명분 아래 DSR을 늦췄다가 부동산은 폭등하고 가계부채의 고삐가 풀린 셈이다.
부동산과 가계부채뿐만이 아니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민간과 자율 우선을 외치면서도 수시로 물가를 이유로 주 1회 꼴로 가격에 개입한다. 건전재정 기조에 내수는 침체하는데 한국은행만 압박하는 모습도 연출된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우선순위부터 다시 정하고 모순적인 대책을 손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26일 “레고랜드 사태 때부터 부동산 공급 자금을 담당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을 틀어 막고 고금리 시기에 금융회사들이 대출 금리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등 금융감독원이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한 것이 누적된 결과”라며 “한은 역시 경제·금융·통화 당국 수장 간 회의(F4)에서 적극적으로 정부와 싸우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집값이 크게 오르고 있어 이 문제를 풀지 않고는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금리를 낮출 경우 부동산 시장이 또다시 급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월 11억 9598만 원이었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이달 들어 12억 2914만 원까지 뛰었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다음 달까지는 부동산 시장을 우선적으로 지켜보고 심리가 가라앉는 것이 보이면 바로 내수에 집중하는 쪽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금리인하만 요구하고 있다.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기준금리를 내리기 전에 대출규제부터 손봐야 하는데 거꾸로 DSR 연기를 했다”며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정책을 펴면서 금리인하를 원하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를 잡는 데 올인했어야 하는데 부동산이 오르면서 정부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라며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니 강제로 대출 총액을 줄이게 하면서 한은에는 금리를 왜 안 내렸냐고 하는 것은 정부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내수의 경우 재정 문제가 얽혀 있다. 재정은 이미 상반기에 올해 총량의 64%를 써버렸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세수 펑크’ 규모만 23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실탄이 넉넉하지 않은 정부 입장에서는 한은의 통화정책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 재정 지속성에 무게를 두다 보니 대응책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렇게 가계부채가 늘어난 상황에서는 부채 상환이 더 급하기 때문에 금리가 내려가도 강한 내수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고 우려했다.
특히 과도한 건전재정 기조는 곳곳에서 모순을 낳고 있다. 정부 여당은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국내에서 반도체 산업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려면 특별회계를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재원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기재부는 반도체 특별회계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대만처럼 직접 보조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기재부는 세제 지원이 옳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제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 교수는 “정부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듯한데, 부동산 정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그나마 나은 궁여지책”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 재정 정책을 펼칠 만한 여력도 부족한 만큼,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금융 시장이든 소비 시장이든 유통 단계를 줄이는 것과 같은 근본적인 대책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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