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훈 LG AI연구원장은 국내 148개 기업의 인공지능(AI) 활용 현황을 진단하는 서울경제신문의 심층 설문에 응하면서 “국내 고급 AI 인재의 해외 유출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나라 대학원을 졸업하는 AI 인재의 40%는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는 게 학계의 분석이다. 가뜩이나 인재풀이 부족한데 그나마도 해외 빅테크에 뺏겨 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셈이다.
배 원장은 우선 “국내 대학 모든 전공에 AI를 접목하자”고 제언했다. AI가 경제·산업을 넘어 사회 전반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는 “교육 현장부터 변화해야 한다”며 “단독 AI 학과를 세우는 수준이 아니라 모든 전공에 AI를 접목해 융합형·실무형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교육 현장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미네르바대’로 불리는 태재대가 대표 사례다. 태재대를 이끌고 있는 염재호 총장(전 고려대 총장)은 26일 진행한 기자 간담회에서 현재 운영하고 있는 5개 학부를 2030년까지 모든 전공에 AI가 융합되게 바꾸고 전공 역시 클러스터 형식으로 바꿔 모든 학생이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AI 전공’을 따로 둘 것이 아니라 금융·법률·농업 등 전 분야에 AI가 녹아들 수 있도록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교육 현장뿐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도 AI 전환 및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배 원장은 지적했다. 그는 “AI 출현에 따라 업무 환경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며 “국가 차원에서 기업 인력의 AI 교육을 확대하고 기업의 재교육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I를 기업에 맡겨두기만 해서는 변화의 빠른 속도를 따라잡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기업이 직원 재교육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사례도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AI 고객 서비스 로봇인 ‘빌리’를 도입한 이케아의 경우 빌리에 고객 상담 업무의 절반가량을 맡기는 대신 1만 명 콜센터 직원에게 디자인 교육 등을 시켜 서비스의 질을 더욱 고도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순한 업무는 AI에 맡기고 복잡하고 세심한 업무는 인간이 맡아 고객 만족도를 높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물론 이케아의 사례를 모든 기업에 적용할 수는 없지만 각 기업들이 각자 사정에 맞는 적응 대책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배 원장은 “AI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AI 인재 확보와 육성이 국가 경쟁력과 곧바로 연결되는 만큼 산학연정이 협력해 체계적 인재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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