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한국은행과 정부의 물가 관리 목표치인 2%까지 떨어지면서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내수 부진과 물가 흐름을 고려하면 한은이 8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했어야 한다”며 한은 실기론을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가계대출 급증세를 고려하면 통화 완화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한은 실기론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물가가 안정된 가운데 내수는 나빠 고금리를 유지할 필요성이 없는 상황”이라며 “8월에 금리를 내렸어야 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은의 정책 전환이 늦었다는 것이다. KDI는 국책연구기관인 만큼 정부 입장이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경기가 저점을 찍었지만 회복이 잘 안 되고 있는 상황”며 “가계부채가 늘었다고 해서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크게 위험해지는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금융 안정보다는 내수 부양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가계부채 정책에 대해서도 “금리를 인하하면서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강화와 같은 거시 건전성 정책으로도 대응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정 실장은 “현재 부동산 가격 상승세도 서울에 집중돼 있고 지방의 경우에는 오름세가 뚜렷하지 않다”며 “한은의 금리정책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특정 지역(서울)의 주택 가격에 대해서는 우선순위가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 부총재 출신으로 금융통화위원을 역임한 이승헌 숭실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진단은 다르다. 그는 “통화정책에서 물가도 물론 중요하지만 여전히 집값과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은이 실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현재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를 두고 제기되고 있는 비판의 요지는 ‘내수가 안 좋으니 금리 인하로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금리 때문에 소비를 안 한다는 주장은 한국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그는 “빚이 소비를 억누르는 요인으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금리를 내리면 단기적으로 이자 부담이 줄어들어 소비가 늘고 건설투자가 확대되는 효과가 발생할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빚을 다시 늘리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기준금리를 내리고 대출 규제를 하면 된다는 주장에는 “대출 규제는 풍선 효과로 인해 억제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기준금리(3.5%) 수준에서도 시중 유동성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 이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6월 광의통화(M2)를 보면 전월 대비 증가율이 6.1%나 된다”며 “금리가 이 정도로 높음에도 통화가 계속 풀린다는 얘기는 금리가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방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교수와 정 실장 모두 내수를 살리기 위한 재정 확장에 대해서는 신중론을 견지했다. 이 교수는 “무리한 재정 투입과 금융 완화는 구조조정 문제를 뒤로 미루는 측면이 있다”며 “구조 개선으로 중장기 성장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실장도 “현재 재정이 상당히 확장적이라고 보고 있다”며 “통화정책은 긴축적으로 운용하는 가운데 재정 정책을 확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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