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서 6일(현지 시간) 개막하는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4’에서 마주한 중국 업체들의 공세는 그야말로 매서웠다. 아직은 삼성전자나 LG전자, 독일 밀레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 파워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인해전술을 앞세워 유럽 가전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 속에 미국 시장 확장이 사실상 어려워진 중국 기업 입장에서도 유럽 시장은 결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인해전술 나선 중국=IFA 2024에 참가하는 중국 가전 기업은 약 1300개로 전체 국가 중 가장 많다. 지난해 1200개 업체가 참가했던 기록도 1년 만에 갈아치웠다. 우리나라 업체들이 127곳 참가한 것과 비교하면 규모에서 10배나 차이가 나는 셈이다.
중국 가전 업계의 스타들도 일제히 독일 땅을 밟았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인 아너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자사 플래그십 스마트폰인 폴더블폰 ‘매직V3’를 현장에서 공개하고 중국 대표 가전 기업인 하이얼의 닐 턴스턴 최고경영자(CEO)는 스마트홈을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선다. 아너는 삼성전자를 제치고 전 세계에서 가장 얇은 폴더블 스마트폰을 매년 공개하는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TCL은 올해 행사에 최대 스폰서로 참석해 참가자 배지에 자사 로고를 새기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선보였다.
국내 가전 업계도 중국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직은 우리가 기술력에서 앞선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우위를 유지할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자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중국은 소비자의 니즈를 빠르게 파악해 제품을 내놓은 타임투마켓(Time to Market·제품이 시장에 출시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에서 한국보다 앞선다”며 “로봇청소기 시장을 그렇게 내줬고 앞으로 TV나 냉장고, 세탁기 등도 사정권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TV 시장의 경우 삼성전자가 28.8%의 점유율로 19년 연속 1위 수성에 다가섰지만 지난해(31.2%) 대비 점유율은 하락해 중국 업체들과의 격차는 오히려 줄었다. 이 기간 TCL은 1.9%포인트, 하이센스는 0.5%포인트를 늘리며 삼성전자 하락분의 상당 부분을 가져갔다.
◇AI 초격차로 승부=중국의 도전에 맞선 국내 기업들은 한 단계 진화한 인공지능(AI) 기능을 통해 초격차 수성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이번 IFA에서 사용자 목소리나 위치를 인식하는 ‘보이스 ID’를 최초로 공개했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 개별 사용자 목소리를 인식해 AI가 개인 관심사나 취향·일정 등을 반영한 맞춤형 해법을 내놓는다. 가령 “저녁 메뉴 추천해줘”와 같은 명령에 “요즘 밖에서 식사를 많이 하셨으니 속에 좋은 해장국은 어떠세요”라고 제안하는 식이다. 개인의 목소리를 따로 따로 인식하기 때문에 아빠와 엄마, 자녀들에게 전부 개인화 제안이 가능하다.
이번에 공개한 ‘앰비언트 센싱’도 삼성 비장의 무기다. 이 기능은 센서를 활용한 위치 기반 서비스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안방에서 “지금 몇시야”라고 물으면 사용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안방 TV가 활성화하거나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로봇청소기가 사용자 근처로 와서 음성 알림을 해주는 것이다.
TV 또는 냉장고 근처에 가면 스크린이 자동으로 켜지고 약속 시간이 다가오면 로봇청소기가 사용자에게 다가와 출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알람도 해준다. 보이스 ID와 앰비언트 센싱은 내년 삼성 주요 가전에 탑재된다.
LG전자는 AI 홈을 주력으로 내세운다. LG전자 전시관 입구에서부터 가로 30m 길이 초대형 발광다이오드(LED) 디스플레이를 설치해 AI 홈을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를 연출할 예정이다. 전시 공간 내부는 AI 홈을 고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 이미 우리 곁으로 다가온 AI 가전을 실감할 수 있도록 한다. 자율주행 기술로 움직이는 이동형 AI 홈 허브(코드명 Q9)도 볼거리다.
업계 최초로 생성형 AI를 탑재한 AI 홈허브인 ‘씽큐 온’은 LG의 주무기다. 씽큐 온은 사용자의 캘린더 일정을 음성으로 알려주고 시간이 촉박하면 택시까지 불러주는 기능을 탑재했다. 가사 노동을 최소화한다는 목표 아래 더 똑똑한 서비스를 사용자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최근 기업간거래(B2B)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LG는 다양한 냉난방공조(HVAC) 시스템도 공개했다. AI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열 관리와 관련해 토털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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