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진이 위암 환자의 면역상태에 영향을 주는 기능성 장내균총(마이크로바이옴)을 규명했다. 면역항암제가 듣지 않는 진행성 위암이나 재발 환자를 위한 새로운 면역항암 치료법의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송교영 서울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와 정윤주 여의도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 조미라 가톨릭의대 의생명과학교실 중개면역의학 연구실 교수 공동 연구팀은 위암 환자의 기능성 장내균총과 면역세포를 분석한 결과 장내균총의 유익한 대사산물인 부티레이트가 종양 미세환경에서 면역력 저하를 제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6일 밝혔다. 부티레이트는 장내균총 중 하나인 페칼리박테리움의 대사산물이다. 섬유질을 분해하고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대장 내 점막 염증을 줄이고 면역체계를 강화하며 소화 과정을 돕는 등 유익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사람마다 부티레이트를 생성하는 페칼리박테리움의 양이 다르고, 중증 감염병 발병 위험도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연구팀은 장내균총이 면역세포의 기능을 조절하고 ‘PD-1·PD-L1’ 등을 표적하는 면역관문억제제 치료항암제 치료반응과 상관성을 갖는다는데 착안해 연구에 착수했다. 환자의 혈액 내 면역세포와 종양조직에서 면역세포 아형을 분석한 결과 진행성 위암 환자는 조기 위암 환자보다 혈액 내 면역세포와 종양조직에서 면역억제인자로 알려진 PD-L1, IL-10의 발현이 높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 위암 환자의 장내균총을 분석해 부티레이트를 생산하는 페칼리박테리움 외에 면역반응을 활성화하는 콜린셀라, 소화 과정을 돕는 비피더스균 등 일부 장내세균이 감소되어 있다는 점도 밝혔다.
연구팀은 추가적인 동물실험을 통해 부티레이트가 위암 세포에 끼치는 영향을 확인했다. 위암 환자의 면역세포를 이식한 쥐을 활용해 생체 내 실험을 진행한 결과 부티레이트가 위암 세포의 PD-L1과 IL-10 발현을 억제하고 암 촉진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암 모델에서 부티레이트의 구체적인 항종양 효과를 확인한 첫 사례다.
면역항암요법은 종양 주위에 면역반응을 유도해 환자의 면역체계를 강화함으로써 항종양 효과를 나타낸다. 대표적인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는 면역관문 단백질인 PD-L1의 활성을 저해해 우리 몸의 T세포가 종양 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한다. 덕분에 종양에 직접 작용하는 세포독성 항암제나 표적치료제보다 독성이 적다. 그러나 한국인의 암 사망 원인 4위로 꼽히는 위암은 종양의 미세환경에서 면역학적 반응을 기대하기 어려워서 면역항암요법의 치료 효과가 현저히 떨어졌다.
‘제2의 게놈’으로도 불리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 몸 곳곳에 터를 잡고 사는 미생물 집단의 유전정보 전체를 말한다. 이번 연구는 마이크로바이옴이 암 주변에 모여든 면역세포들의 기능을 강화해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획기적인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송 교수는 “면역항암제가 잘 듣는 환자를 선택하거나 치료반응을 높이기 위한 인자들이 부족하다”며 “장내균총이 면역저하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매우 중요한 연구”라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개인기초연구(중견연구) 지원으로 진행됐으며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장내 미생물(Gut Microbes)’ 최근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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