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코스피가 3%대 폭락하면서 지난달 ‘블랙 먼데이’의 공포가 재현됐습니다. 간밤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가 9%대 추락하자마자, 우리나라 시가총액 1, 2위 기업인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나란히 곤두박질쳤는데요. 증권가에서는 9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예정돼있는 데다, 엔비디아가 건실한 매출 성장을 보이고 있어 의아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오늘 선데이 머니카페에서는 이러한 호재에도 왜 증시가 자꾸 급락하는지, 똑같은 급락에도 왜 한국 증시는 유독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지, ‘롤러코스터’ 장세에서는 어떤 투자 전략이 적합한지 알아보겠습니다.
반도체株 쏠림 심화…작은 악재에도 예민해진 투심
이번 주 뉴욕 증시에서 엔비디아는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3일(현지 시간) 9.53% 급락한 데 이어 4일과 6일에도 1.66%, 4.09% 떨어졌는데요.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가 발표한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시장 기대에 못 미친 47.2를 기록하면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진 탓이었죠. 여기에다 블룸버그 통신이 미 법무부가 엔비디아를 상대로 반(反)독점법 위반 혐의 조사에 대한 소환장을 보냈다고 보도한 것도 악재를 더했습니다.
악재가 전해지자마자 국내에서 SK하이닉스는 무려 8%대 급락했고, 삼성전자도 3.45% 곤두박질쳤습니다. 삼성전자는 10개월 만에 ‘6만 전자’로 내려앉았고,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도 15만 64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주가가 지난 3월 수준으로 회귀한 셈이죠. HBM 제조 장비를 공급하는 한미반도체(042700)도 9만 6500원으로 급락하며, 주가가 지난 3월 수준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투자 전문가들은 그동안 엔비디아를 비롯한 인공지능(AI) 반도체 관련주가 지나치게 많이 올라 시장이 예민해진 상태라고 분석했습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엔비디아의 현 주가는 먼 미래에 대한 기대까지 투영하고 있어 조그마한 악재에도 과민 반응하고 있다”며 “미국 경기지표가 ‘좋다, 나쁘다’ 한 방향을 일관되게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양방향이 혼재돼있는 상태라 경기침체 우려로 주가가 빠졌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짚었습니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올 들어 투자금이 AI·반도체 빅테크로 대거 쏠리면서, 지표가 어떻게 나오든 일단 챙기고 보자는 식의 심리가 저변에 깔려있다”고 봤습니다.
美 금리인하 기대에도 맥 못추는 아시아 증시…한국만 유독?
갑작스러운 급락에 투자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닐텐데요. 블랙 먼데이 이후 또 한번의 급락을 겪으면서 코스피 지수는 작년 말 종가부터 이달 6일까지 4.70% 역성장했습니다. 같은 기간 나스닥은 13.0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14.03% 오른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죠.
물론 투자 심리가 위축될 때마다 글로벌 투자금이 미국과 같은 선진국으로 몰리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일본 증시도 이번 주 지난달 블랙 먼데이 때와 마찬가지로 크게 떨어졌습니다. 일본의 대표 주가 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도 4일 4.24%, 떨어졌죠. 하지만 길게 보면 닛케이지수는 작년 말 종가 대비 9.32%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속언이 있죠.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닛케이는 올해 ‘잃어버린 30년’을 딛고 올해 역대 최고점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앞서 시행한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하면서, 중국에서 빠져나온 투자금이 몰린 덕분이었습니다.
당분간 ‘박스피’ 전망…투자 전략은?
국내 증시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유독 소외되는 이유가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그만큼 저조해서 그런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코스피 상장기업들의 영업이익은 102조 9903억 원으로 무려 91.43% 증가했고, 순이익 역시 78조 7372억 원으로 107.21% 성장했습니다. 삼성전자를 제외해도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63.72%, 79.08% 증가했죠. LS증권은 올해 코스피 기업들의 순이익이 역대 최대였던 2021년(190조 4100억 원)을 넘어선 192조 2000억 원으로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신중호 LS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가 3300까지 올라섰던 3년 전보다 순이익이 늘었음에도 증시가 부진한 이유가 “같은 기간 자기자본도 400조 원가량 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자기자본이 급증했다는 것은 기업들이 동일한 수준의 이익을 내기 위해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즉, 중복 상장 등의 이유로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저하됐다는 걸 말합니다. ROE는 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비율을 뜻합니다. 기업에 투입된 자본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됐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죠. 신 센터장은 이 자본금이 소각·합병·구조조정 등을 통해 어떻게든 디레버리징이 돼야 코스피가 3000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신 센터장은 밸류에이션(가치평가) 하단에 위치한 업종과 실적 성장이 확실한 종목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이원화된 투자 전략을 추천했는데요. 한마디로 ‘바닥을 찍은 종목’과 눈에 띄는 호재가 있는 종목들로 나눠서 투자하라는 것이죠. 그는 “주가의 상승 여력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하방 경직에 기댈 수 있는 업종을 추천한다”며 “현재 최악의 업황을 겪고 있는 건설, 금리 인하 수혜주인 헬스케어를 선호 업종으로 제시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헬스케어의 경우 미국 의회에서 연내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 생물보안법의 수혜가 더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울러 견조한 실적에도 주가가 저평가된 운송, 애플의 아이폰16 출시를 앞두고 매출 성장이 기대되는 정보기술(IT) 하드웨어 업종도 추천주로 제시했습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당분간은 조정 국면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현금 비중을 늘릴 것을 권했습니다. 이 연구원은 “11일 공개될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대비)이 7월 2.9%에서 2.6%로 크게 둔화되면서 경기침체 공포 후퇴, 물가 안정 및 통화정책 기대가 유입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코스피가 기술적 반등을 보이더라도 단기 등락 과정에서 2650선에서 매수의 기회가 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추선 연휴 전까지는 현금 비중을 늘릴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선엽 신한투자증권 이사도 “확연한 주도주 나타나기 전까지는 당분간 많이 빠졌던 종목들 중심의 순환매 장세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죠.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헬스케어, 2차전지, 금융업 등을 추천 업종으로 제시했습니다.
다음 주는 9일 애플의 아이폰16 출시, 10일 미 대선 TV토론, 11일 미 8월 소비자물가(CPI) 등이 예정돼있습니다. 아이폰16의 경우 추후 업데이트될 애플 인텔리전스의 주요 기능이 어떻게 구체화될지와 챗GPT를 쓸 수 없는 중국 시장에서는 어떻게 AI기능을 구현할지 등에 대한 의문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선 TV토론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의 경제 정책이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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