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근로자 가구의 근로소득이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약 8% 증가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크게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를 반영한 실제 봉급이 줄다 보니 내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인데 노동생산성과 유연성을 높이지 않으면 이 같은 구조적인 침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 2분기 근로자 가구의 가구당 월평균 근로소득은 480만 9675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 전인 2019년 1분기(444만 8305원)에 비해 8.1%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가 13.9%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봉급 인상 속도가 물가 상승률에 비해 6%포인트나 낮은 셈이다. 장바구니 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이 기간 동안 17.7% 상승해 근로소득 증가율의 두 배를 웃돌았다.
미국의 상황은 다르다. 임금 증가 속도가 물가 상승률을 크게 앞질렀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2019년 1분기에서 올해 2분기 사이 미국 근로자의 평균 시급은 25.9% 증가해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상승률(19.7%)을 웃돌았다. 미국이 기본적으로 내수 의존도가 크지만 높은 물가 상승률에도 견조한 성장세를 보인 이유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6%, 한국은 2.5%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우 노동자 급여 상승률이 물가보다 낮아 내수가 부진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날 발간한 ‘경제동향’ 9월호에서 “고금리 기조로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경기 개선이 제약되는 모습”이라며 10개월 연속으로 내수가 부진하다는 공식 진단을 이어갔다.
학계에서는 공급 측면의 인플레이션과 연공서열제에서 1차적인 원인을 찾는다. 코로나19 이후의 물가 상승은 에너지와 식량 가격 상승에 기인했다. 공급 인플레는 기업의 이익을 깎아 임금을 올려줄 여력을 줄인다. 미국 역시 공급 인플레에서 출발했지만 이후 노동력 공급 부족에 임금이 오르면서 수요 인플레도 발생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미국은 채용과 해고가 한국보다 유연하고 생산성이 높아 재채용 과정에서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도 있다.
반면 한국은 연공서열제가 강해 물가 상승분이 임금에 반영되는 속도가 더 느릴 수밖에 없다. 엄상민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처럼 대기업을 중심으로 연공서열제가 강한 곳은 입사할 때부터 임금 테이블이 정해지게 된다”며 “임금이 경제 환경 변화를 즉각 반영하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구조 개혁으로 근로자들의 실질 임금을 높여줘야 내수가 지속 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전체 산업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43.1달러로 추정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9위에 그쳤다. 예정처는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국가들 중 하위권 수준일 뿐만 아니라 OECD 평균(53.8달러) 대비 80.1%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처럼 생산성에 기초한 임금 지급 체계가 고용 안정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KDI는 3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55~64세 근로자 중 임시고용직의 비중이 34.4%로 OECD 회원국(8.6%) 평균을 네 배가량 웃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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