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가 영풍(장씨 일가)과 함께 고려아연(010130)의 최대주주가 된다.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인 영풍과 고려아연에 MBK파트너스가 참전하면서 새 국면에 진입하게 됐다. 장씨 일가와 최씨 가문의 75년 공동경영이 마무리되는 것을 넘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경영권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 및 특수관계인(장 씨 일가)과의 주주 간 계약을 통해 고려아연의 최대주주가 돼 MBK파트너스 주도로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MBK파트너스는 영풍 및 특수관계인 소유 지분 일부에 대한 콜옵션을 부여받기로 했다.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MBK파트너스가 최대주주 그룹 내에서 고려아연 지분을 영풍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보다 1주 더 갖게 된다. 영풍측은 지난 6월14일 기준 고려아연 685만9254주(33.14%)를 보유하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영풍과 함께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로서 역할을 하게 되며 영풍 및 특수관계인으로부터 고려아연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주주의 역할을 넘겨 받게 된다”며 "모든 주주를 위해 지배주주로서의 책임과 권한을 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주주 간 계약은 그동안의 장 씨, 최 씨 간 동업자 관계가 정리되고 영풍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고려아연의 기업지배구조에 새로운 변화와 발전의 기틀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MBK파트너스와 영풍 측은 장내에서 소액주주들의 지분율을 매집해 고려아연 지분율을 과반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으로 전해졌다.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은 약 30%이다. 국민연금은 고려아연 지분 7.8%를 보유하고 있다. 이날 고려아연 주가는 전날 대비 1.46% 상승한 55만 6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75년 동업을 뒤로한 채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영풍그룹은 황해도 사리원 태생의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1949년 공동 설립했으며 그동안 장 씨 일가가 지배회사인 영풍그룹과 전자 계열사를, 최 씨 일가가 고려아연을 맡는 방식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2022년 최 창업주의 손자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체제가 된 뒤 계열 분리 가능성이 본격화됐다.
특히 고려아연 측은 지속적인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대외적으로는 주주 환원 확대를 내세우지만 영풍의 지배력을 낮추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고려아연은 최근 4000억 원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승인했다. 지난해 11월 1000억 원, 올 5월 1500억 원에 이어 자사주 매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 회장 측은 보유한 자사주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LG·한화 등의 국내 기업을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영풍 측의 ‘배당 증액 요구’는 고려아연이, 고려아연 측의 ‘제3자 유상증자 허용 여부’는 영풍이 승리해 무승부로 끝났다. 이후 고려아연과 영풍이 만든 비철금속 제품을 유통하는 핵심 계열사인 서린상사 경영권을 놓고 벌인 2라운드에서는 고려아연이 이겼다. 아울러 공동 구매·영업 중단, 아연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 황산 처리 중단 소송 등 갈등은 끊이지 않는 상태다. 영풍과 선 긋기에 나선 고려아연과 계열사들은 최근 40년 넘게 입주했던 영풍빌딩을 떠나 종로구 그랑서울빌딩으로 이전했다.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명예회장의 장남 조현식 고문, 차녀 조희원 씨와 함께 경영권 확보를 위한 공개매수에 나섰으나 차남 조현범 회장 측의 방어로 실패했다. 고려아연은 이때 조현범 회장 쪽 우군으로 나서 MBK파트너스와 악연이 있다. 반대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최 회장 측 우호주주로 고려아연 지분 0.78%를 보유 중이다.
장형진 영풍 고문은 “지난 75년간 2세까지 이어져온 두 가문 간 공동 경영의 시대가 이제 여기서 마무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3세까지 지분이 잘게 쪼개지고 승계된 상태에서 그들이 공동 경영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비철금속 1등 제련 기업으로서 고려아연의 글로벌 위상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는 MBK파트너스와 같은 기업 경영 및 글로벌 투자 전문가에게 지위를 넘기는 것이 창업 일가이자 책임 있는 대주주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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