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색감의 모칠라 가방으로 시작돼 10년 동안 이어온 콜롬비아와의 인연이 문화 외교로 확장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패션과 외교의 경계를 넘나들며 ‘민간 외교관’으로 불리게 된 제 모습을 정말 10년 전에는 꿈도 꾸지 않았고 이런 모습은 계획되지 않은 미래였습니다.”
최근 주한 콜롬비아 대사관(주한 콜롬비아 대사 알레한드로 펠라에즈 로드리구에즈)으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한 김정아 스페이스 눌 대표이사(CEO)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감격에 벅찬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지난 9일 김정아 대표는 저서 ‘모칠라 스토리’(2016년)를 비롯해 ‘라틴 아메리카의 보석, 콜롬비아’(2024년)를 통해 콜롬비아의 문화를 알리고 양국의 문화와 경제 협력에 기여한 한편 두 나라의 우정도 강화시키는 데 대한 공로를 인정 받아 콜롬비아 대사관으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했다.
남미 국가에서는 유일하게 6·25 전쟁에 파병을 해 준 ‘형제의 나라’인 콜롬비아이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낯설거나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 그런데 김 대표는 어떻게 이 낯선 나라와 인연을 맺었을까? 패션회사 대표이기 이전에 러시아 문학박사로 인문학자인 그이기에 러시아라면 그와의 인연이 당연해 보이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콜롬비아라니.
그와 콜롬비아와의 인연은 2016년 여름 시작됐다. 시에나 밀러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화려한 색감과 무늬가 시선을 사로잡는 뜨개 가방을 메고 다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된 이 ‘뜨개 가방’은 곧바로 글로벌 히트 아이템이 됐다. 이 ‘뜨개 가방’의 정체는 무엇일까?
콜롬비아에서 가장 큰 인디언 부족인 와유족의 여인들이 만드는 전통 가방으로 ‘모칠라’라고 불린다.
한국에서도 ‘강남의 패셔니스타’ 고객들의 ‘모칠라’를 구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면서 김 대표와 콜롬비아의 인연은 시작됐다. 그는 “처음에는 색감이 너무 화려해 유행을 타는 모칠라를 팔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그런데 제가 운영하는 편집숍 스페이스눌에서 ‘모칠라'를 찾는 고객들이 너무 많아 인터넷으로 주문을 넣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주문을 넣는데 수작업 특성 상 최소 6주를 기다려야 하고. 주문서에는 사진과 100% 똑같은 아이템이 도착한다는 보장이 없다고 적혀 있어서 어이가 없었다”며 “바이어로서 6주를 허비할 수 없어서 정말 무식하게 콜롬비아로 날아갔다”고 덧붙였다. 모칠라 백 주문을 위해 콜롬비아를 방문한 게 남미 첫 방문이었다. 심지어 그가 주문한 가방을 만드는 곳은 작은 시골마을 리오아차와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과히라 사막에 있는 와유족의 마을 란체리아였다. 서울에서 리오아차까지 무려 30시간이 넘게 걸렸다.
‘황당한 주문서’에 당장 날아간 콜롬비아 리오아차. 오직 제대로 된 가방을 사러 갔던 그는 뜻밖의 운명을 만나게 됐다. 과히라 사막에 사는 와유족 아이들을 안아보고, 가방을 짜는 여인들을 직접 만나면서 인문학자로서의 호기심이 발동한 것. 그리고 그의 호기심은 책이라는 결과물까지 만들어 냈다.
그는 “와유족의 어린아이들을 만났고, 갓난쟁이 아이도 오랜 동안 안아주고 한 것을 계기로 그들의 문화적 전통적 의미 알리고 그 인세로 와유족 아이들을 돕기 위해 ‘모칠라 스토리’를 썼다”며 “콜롬비아에 관한 첫 책 이후 ‘라틴 아메리카의 보석, 콜롬비아’까지 두 권의 책을 펴냈다”고 설명했다. 책 두 권의 인세 전액은 콜롬비아 아동 교육을 위해 전액 기부했으며 추가 인세도 모두 콜롬비아 아동 교육을 위해 쓰인다.
‘강남 패셔니스타’ 고객들의 요구로 모칠라 가방을 사러 생애 최초로 남미로 갔던 김 대표는 ‘가방 장사’가 아닌 인문학자로서의 유전자와 감성이 발동해 국내에서는 소개된 적이 없이 콜롬비아의 ‘진짜 이야기’를 담았다. 문명의 이기와 담을 쌓고 사는 와유족의 가방이 어떻게 콜롬비아를 넘어 할리우드로 한국으로 오게 됐는지를 비롯해 콜롬비아에 살지만 와유니키라는 고유 언어를 쓰고 콜롬비아 법이 아닌 와유족의 법을 따르는 ‘독립적인 와유족’의 이야기 등이 흥미롭고 감동적인 서사로 펼쳐냈다. 콜롬비아 정부로부터 어떤 재정 지원도 받지 않는 조건으로 자치권을 인정 받은 와유족. 그런데 3년 동안 계속된 가뭄으로 인해 염소, 당나귀들이 다 죽는 등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자 이들은 NGO 단체에 자신들의 수공예품인 모칠라를 팔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와유족 여성과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할리우드 ‘셀럽’들이 동참했고, 기꺼이 ‘모칠라백’의 홍보 대사가 된 것이다. 모칠라 가방의 세계적인 인기는 이렇게 ‘소셜 마인드’ ‘윤리적 소비’에서 시작된 것이다. 김 대표는 “이 사연을 접하고 리오아차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가능한 많은 모칠라를 팔아 와유족을 돕겠다고 결심하게 됐다"며 “와유족의 거의 유일한 생계 원천인 모칠라를 많이 팔기위해 국내 유명 백화점들에서 많은 팝업 스토어를 전개해, 콜롬비아 대사로부터 국내 유일 “정품 인증서”를 획득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2016년 이후 주한 콜롬비아 대사관 및 그 부속 비즈니스 섹터인 프로콜롬비아와 밀접하게 일하고 있으며, 한국 진출을 원하는 콜롬비아 패션 브랜드들의 컨설팅을 해 주고 있다.
콜롬비아가 국내에 알려지는 데 공을 세웠다는 평가가 잇따르면서 그는 2019년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주한 콜롬비아 비즈니스 섹터) 프로콜롬비아의 초대로 콜롬비아를 재방문해 역사·관광 명소를 둘러 볼 기회를 가지게 됐다. 보고타, 메데인 등의 명소를 다 돌아본 그는 콜롬비아에 감동을 받아 ‘진정한 콜롬비아 홍보대사’이자 ‘콜롬비아 전문가’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교보문고에 가 보니, 실망스럽고도 놀랍게도, 콜롬비아 관련 서적이 하나도 없었다”며 “커피 이야기 등은 있어도 콜롬비아에 관한 것은 전혀 없었고, 심지어 여행 섹션에서도 콜롬비아는 라틴아메리카에 두 페이지만 차지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콜롬비아는 한국 전쟁 때 남미에서 유일하게 파병해준 ‘형제 국가’이고,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카르타헤나에 우리나라 국가보훈처가 보내준 거북선도 있는 ‘형제의 나라’에 대한 책이 한 권도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고 했다. 이 같은 안타까움과 고마움을 담아 그는 올해 한국어로 된 최초의 콜롬비아 국가에 대한 서적 ‘라틴 아메리카의 보석 콜롬비아’를 출간해 콜롬비아의 아름다움에 대해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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