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의 수탁자 행동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가 2016년 12월 도입 이후 처음 개정된다. 이는 금융 당국이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를 강조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기업 지배구조 관련 법안을 마련하는 가운데 기관투자가들이 거버넌스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게끔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18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한국ESG기준원은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안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민간 자율 규범인 스튜어드십 코드는 한국ESG기준원이 개정안 초안을 만들면 공청회 등을 거쳐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스튜어드십 코드 발전위원회 의결을 통해 확정된다. 한국ESG기준원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개정할 내용이 있는지 살펴보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내 상장사에 투자한 기관투자가가 타인의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수탁자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행해야 할 일곱 가지 원칙을 말한다. 현재 국민연금 등 4대 연기금을 비롯해 은행·증권·보험·자산운용사 등 국내 232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주주 서한, 비공개 미팅, 의결권 행사 등이 있다. 세부 원칙을 지키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이행하지 않으면 사유와 대안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한국ESG기준원은 올해 초 정부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발표한 후 기관투자가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한 차례 개정한 바 있다. 가이드라인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규 위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마련한 일종의 법령 해설서다. 가이드라인이 아닌 본문은 도입 이후 한 차례도 수정된 적이 없다.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이 추진되는 것은 최근 기업 지배구조를 둘러싼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연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기업가치 제고와 기업 혁신 등을 위해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주문하고 있다. 당초 연기금·운용사 등이 의결권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는데도 여전히 의결권 행사가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에서 기업 지배구조 관련 법안이 대거 발의된 것도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3개월 동안 발의된 상법 개정안만 18건에 이른다. 이중 대부분이 기업 지배구조 관련 법안으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비롯해 감사위원 전원 분리 선출, 집중 투표 의무화 등이 포함돼 있다. 지배구조 법안 가운데 기업을 과도하게 규제할 수 있는 사안을 빼고 스튜어드십 코드에 반영할 수 있는 부문이 있는지 살펴볼 가능성이 있다.
다만 기업 지배구조에 대해 기관투자가 역할만 강조하다 보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배구조 규제를 지나치게 강화하면 기업 경영과 투자 등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예전엔 이해관계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최근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배임 등 문제를 더욱 신경 쓰게 됐다”며 “안건에 따라 기관투자가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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