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년간 추석 연휴가 낀 달에 가계대출 증가세가 감소했다가 다음 달 다시 증가하는 흐름이 반복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집값이 급등하고 가계부채 증가율이 급격히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달에 가계대출이 주춤하더라도 10월에 증가 폭이 다시 커질 수 있는 만큼 주의 깊게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서울경제신문이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은행의 가계신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추석이 있는 달의 전월 대비 예금 취급 기관 가계대출 증가율이 직전월보다 감소한 연도는 15개년이었다. 추석이 속한 달에는 가계대출 증가 폭이 75%의 확률로 줄었다는 뜻이다.
핵심은 추석 다음 달이다. 추석 연휴가 포함된 달 직후의 가계대출 증가 폭이 확대된 연도는 총 16개년(80%)이었다.
금융계에서는 추석 연휴가 낀 달에는 은행 영업일수가 감소해 대출 잔액 증가율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들의 추석 연휴가 주로 포함되는 9월에 분기 결산을 한다는 점도 가계대출 통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도 있다. 은행들이 결산 과정에서 부실 대출을 대손상각비로 비용 처리하면서 9월에 가계대출 증가 폭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특히 올해 9월은 규제 효과까지 겹쳐 있어 전월 대비 가계대출 증가율이 통상적인 수준보다 낮을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나온다. 1일부터 스트레스총부채상환비율(DSR) 2단계가 시행됐기 때문이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따르면 이달 1~9일 주택 구입 목적의 개별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액은 하루 평균 3405억 원으로 8월(4012억 원)보다 15% 줄었다. 이승헌 숭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DSR 규제 강화와 추석 효과, 분기 말 대손상각 등이 맞물려 9월에는 대출 증가율이 전월보다 주춤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9~10월 가계대출 데이터가 한은의 다음달 기준금리 인하 여부 결정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를 기록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릴 기준선까진 내려온 상황이다. 그러나 올 하반기 들어 가계부채 급증 문제가 부각되면서 한은 내부에서도 고심이 큰 모습이다. 당장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기자 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하가 늦어지면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성장 모멘텀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현 상황에서 금리 인하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외환시장 변동성을 확대할 위험이 더 크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최소한 가계대출 증가세가 주춤하다는 점이 어느 정도는 확인돼야 한은이 다음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명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다음 달 가계대출 증가 폭이 한풀 꺾인 것으로 확인되면 한은이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증가세는 한 달만 봐서는 부족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이 보통 주택 거래 시점으로부터 두세 달 시차를 두고 집행된다는 점도 변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전국 아파트 매매(신고일 기준)는 5만 4732건으로 전월보다 26.4% 증가했다. 시중에 유동성이 아직 풍부하다는 해석도 있다. 한은은 7월 광의통화(M2)가 전월보다 0.4% 늘어 1년 2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교수는 “부동산 대기 수요는 많고 아파트 가격은 계속 상승세”라며 “기준금리 인하가 소비 진작보다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화 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추석 때문에 일부 노이즈가 있을 수는 있지만 주담대의 경우 2~3개월 계약 뒤 시차를 두고 집행되기 때문에 몇 달 전 것이 이달에 집행되는 것”이라며 “연휴가 미치는 영향은 일부 있을 수 있으나 제한적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