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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年 수백건 조정하지만 강제력 없어…갈등관리법 제정해야"

[강원, 화천댐 물 산단공급 반대]

고용·환경·해수부 등 7개 부처

5년간 1290여회 조정협 열어

정치권 등 반대에 무력화 일쑤

첨단산업은 적기 지원이 중요

갈등해결 뒷받침할 장치 필요

용인시 원삼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개발 현장. 사진 제공=용인시




강원특별자치도와 화천군 지역은 화천댐 용수의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공급에 대해 정부가 어떠한 협의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국가산단 용수 공급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고 타당성조사와 기본 계획을 수립하면서 용수 공급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만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화천댐 용수를 산단에 보내게 되면 사실상 다목적댐으로 용도가 바뀌는 것임에도 댐 주변 지역에 대한 합당한 지원을 회피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문제는 국가전략산업인 반도체의 중요성이다. 업계에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완성되면 하루 약 78만 8000톤의 용수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력과 용수가 가장 큰 문제”라면서 “반도체 공정에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한데 용수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공장이 가동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용수는 2030년 기준 일일 3만 톤을 시작으로 완공 시에는 70만 톤 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용인 반도체 산단에 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다목적댐인 소양강댐과 충주댐은 2035년 기준 여유 물량이 1일 5만 톤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사용할 공급 용수를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발전용 댐인 화천댐을 다목적댐으로 전환하고 하루 60만 톤을 끌어다 쓸 계획이었다. 하지만 화천군의 강한 반대로 정부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물은 주인이 없고 어차피 하류로 내려가는 물”이라며 “물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누구의 소유물이 아닌데 어느 주체가 쓴다고 그걸 문제 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화천댐은 현재 한국수력원자력이 관리하는 발전용 댐이라 환경부가 추가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다만 환경부는 지역 주민의 정서를 고려해 조만간 강원도·화천군·한수원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추가 지원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첨단산업 지원과 관련된 갈등이 늘고 있는 만큼 보다 세련된 조정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최근 경기 하남시 동서울변전소를 둘러싼 갈등에서 보듯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공공기관 사이의 갈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조그마한 나라에서 (물이나 전력이) 자기 지역을 통과한다고 과도하게 보상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양쪽에서 어느 정도 선을 지키도록 협의를 해서 합의를 도출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끈기 있게 풀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갈등 관리 방안을 고도화·정교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정부는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공공기관갈등예방규정)’을 통해 각 중앙행정기관에 갈등관리심의위원회와 갈등조정협의회를 두게끔 하고 있다. 갈등관리심의위는 소속 부처의 갈등 관리 전반에 대한 심의를 하고 갈등조정협의회는 실제 정책으로 발생한 갈등을 조정하는 기구다. 별도로 중앙정부와 지자체 사이의 이견은 국무총리실 산하 행정협의조정위원회를 통해 해결하게끔 하고 있다. 지자체 간 갈등은 지방자치단체중앙분쟁조정위원회와 지방자치단체지방분쟁조정위원회에서 취급한다.

문제는 구속력이다. 한양대 산학협력단 갈등문제연구소가 재작년 말 작성한 ‘갈등 관리 제도 운영 성과 및 효과성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17~2021년 사이 고용노동부·환경부·해양수산부를 비롯한 7개 정부 부처에서 총 1294회의 갈등조정협의회가 개최됐다.

하지만 정부의 갈등 관리 기구가 다소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갈등 관리 기구에 이행 강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권의 수요에 따라 지자체의 갈등 관리 기구가 무력화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해석 또한 나온다. 진보당 제주특별자치도당은 이날 제주 제2공항 건설과 관련한 찬반 갈등을 주민투표로 해결하자고 제안하면서 오영훈 제주지사가 내놓은 갈등조정협의회 설치에 대해 “문제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일단 사회적 인식으로 봤을 때 행정부의 갈등 조정 권위가 부족하다”며 “정치권 역시 자신의 문제 해결 능력을 부각하기 위해 행정부의 갈등 관리 기능을 축소한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행정부의 신속한 갈등 해결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법률로 행정부의 갈등 조정 강제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범부처 단위의 대응이 필요한 갈등의 경우에는 국무조정실 등에서 일종의 2심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갈등관리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대통령령으로 공공기관갈등예방규정을 두고 있지만 정부의 갈등 관리 기능을 법제화한 법률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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