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010130)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3조 1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하면서 영풍(000670)·MBK파트너스 측과 벌이는 지분 확보 경쟁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영풍·MBK의 공개매수 마감 1영업일을 앞둔 2일 고려아연이 이런 계획을 내놓고 전면전을 선포하자 양측 승부의 결과는 더 안갯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됐다.
이날 고려아연은 이사회를 열고 경영권 사수를 위해 자사주 취득 및 소각 안건을 통과시켰다.
고려아연의 반격은 투트랙이다. 역대 최대인 2조 6634억 원에 이르는 자사주 공개매수, 글로벌 사모펀드(PEF) 베인캐피털과 손잡고 단행하는 4300억 원 규모의 대항공개매수가 큰 줄기를 이룬다.
예상을 웃도는 자금 동원에서 보듯이 최 회장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다. 회사채를 통해 1조 원을 조달하고 하나·SC증권 등 금융기관으로부터는 무려 1조 7000억 원을 차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기업어금(CP)을 통해 4000억 원을 조달한 데 이어 시장에서 온갖 관측이 나왔던 베인캐피털을 통해서는 4300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일단 자사주 매입은 영풍·MBK의 공개매수(약 2조 3000억 원 규모, 주당 75만 원) 종료일(4일)에 맞춰 시작돼 23일까지 이뤄진다. 주목할 점은 자사주 취득 가격을 주당 83만 원으로 공시한 것이다. 한 번 상향 조정했던 MBK의 공개매수가(75만 원)보다 10.6% 비싼 가격에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다. 최 회장은 배임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이번에 매입한 자사주는 모두 소각한다는 계획이지만 비싼 가격에 회사 자금을 동원한 만큼 향후 법정에서 소송전을 통한 논리 싸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고려아연이 영풍·MBK의 공개매수 마감을 앞두고 막판 전쟁을 불사하는 것은 법원이 회사의 자사주 매입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영풍 측이 지난달 13일 제기한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금지 가처분 사건을 이날 오전 모두 기각했다. 고려아연은 “이번 자사주 매입은 법과 정부에서 인정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며 “자사주 매입과 전량 소각은 전체 주주에게도 이익이 되는 방안”이라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특히 자사주 매입 기간에 베인캐피털로부터 받은 4300억 원을 종잣돈으로 자사주 매입 가격과 같은 83만 원에 대항공개매수에도 나선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는 회사 자금으로 매입해 향후 소각되지만 베인캐피털의 대항공개매수는 외부 자금이 새롭게 투입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역으로 보면 최 회장이 사모펀드 투자 유치를 위해 반대급부로 자신의 지분을 담보로 제시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앞으로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영풍과 MBK 측은 최 회장의 반격에 반발했다. 이들은 이번 조치가 나오자마자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취득 목적 공개매수 절차를 중지하라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MBK 측은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주당 83만 원에 매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자사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이 다분하다”면서 “시세조종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재차 경고했다. 만약 이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 고려아연 측의 대항공개매수가 중단될 수도 있다. 아울러 MBK는 이날 자사주 공개매수에 찬성 결의한 고려아연 이사진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하는 등 최 회장 측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였다.
또 하나의 변수는 MBK가 공개매수가를 추가로 상향 조정할지 여부다. MBK는 일단 시장 상황을 보고 판단한다는 입장이지만 상향 조정이 유력하다. 만약 4일에 가격을 또 올리게 되면 공개매수 기간은 14일까지 연장된다.
한편 이날 고려아연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3.63% 오른 71만 30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대항공개매수 계획이 공표되자 거래량이 폭발하면서 주가가 다소 상승했다. 이날 고려아연 전체 거래량은 약 77만 주를 기록해 지난달 13일 영풍·MBK의 공개매수 계획이 발표된 뒤 최대치를 기록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발표가 시장에 먹히면서 MBK 측 공개매수의 성공 가능성이 낮아진 셈인데 추가 대응이 나오는 만큼 예측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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